제24장 : 가슴으로 살아가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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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들이여, 지금 말하고 있는 나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나는 여러분과 연결되어 있으며, 여러분들 가운데 있습니다. 나는 설교단에서 하는 것처럼,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며, 나는 여러분들과 같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며, 여러분과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 속에서 나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내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인간이 되는 모험에 참여하고 있으며, 다양한 아름다움 속에서 그러한 모험을 인식하는 것이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도전과제입니다. 다시 말해, 그러한 모험은 인간에서 벗어나거나, 위에서 인간을 내려다보거나, 위에서 인간을 조종하거나, 심지어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영적인 성장의 목적이 아니며, 그 대신에, 아래로 내려가, 인간이 되는 현실, 즉 여기 지구에 육화하는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그러한 과정에 내맡기는 것이 지구에서 삶을 살아가는 기술(the art of living)입니다. 지구 위에 존재하고 싶어 하는 것, 그리고 지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것은 삶을 통제하고, 자기 자신을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이상적인 이미지로 재창조하려고 하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잠시, 전(全) 시대에 걸쳐, 여러 이미지들이 어떻게 이상화(理想化)되어 왔으며, 그리고 그러한 모든 이미지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러한 이상화된 이미지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종교적인 전통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상적인 인간이라는 이미지는 모든 인간적인 특성들을 제거하도록 되어 있으며, 그러한 특성들이 나쁘거나, 심지어 악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낡은 전통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화된 많은 새로운 이미지들이 여러분에게 제시되고 있으며, 여러분은 이러한 이미지들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그러한 이미지와 비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러한 이미지로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 하며, 그러한 이미지와 일치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 뒤에 숨어 있는 강박 충동(compulsion)을 느낄 수 있나요? 다시 말해, 삶을 밀어붙이고, 관리하고 싶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나요? 그러한 강박 충동은 여러분이 세속적인 삶에 순응하고, 자기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며, 삶은 여러분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속에서, 주위에서, 그리고 통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흐름과 내맡김”이라는 이러한 요소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진정한 기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과 연결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느껴보세요. 감사와 우정에, 내 가슴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여러분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스승이나, 마스터로 숭배하지 마세요. 그러한 생각을 버리세요. 만약 여러분이 다른 인간에 대해 그러한 마음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 그 존재가 이쪽에 존재하든, 아니면 지구에 살고 있든 관계없이 - 여러분이 진정한 연결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나요? 연결의 힘, 즉 한 가슴에서 다른 가슴으로 개방되어(막히지 않고) 흐르는 힘을 느껴보세요. 여러분이 나, 혹은 어떤 마스터 옆에 서서, 동등하게 연결될 때, 색다르고, 더 즐거운 현실의 문이 지구에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오로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장 깊은 지혜, 즉 자신들이 지닌 앎을 인정할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세속을 초월하거나, 타인들을 가르치고 싶어 함으로써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위대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 위로 올려놓으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들 아래로 내려놓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영적인 마스터들을 더 이상 우르르 보아서도 안 되지만, “한참 뒤처져 있는(are not so far advanced)” 사람들을 내려다보아서도 안 됩니다. 이러한 계층적인(hierarchical) 사고방식으로 인해, 연결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슴속에 머물면서, 자신이 지닌 가치와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열린 자세로 존재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새로운 길로 여러분을 데려다주는 것입니다. 판단이 개방과 호기심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 이런 식으로, 즉 아침에 일어나, 자기 영혼과의 접속점(access point)인 가슴과 연결되는 식으로, 삶에 다가가게 된다면, 삶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세요. 


대개, 온갖 외적인 자극들에 의해 여러분의 관심이 빼앗기게 되는 낮 시간보다, 밤에 자신의 영혼, 즉 내적인 자아와 더 많이 연결이 됩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주변으로(to the periphery of yourself) 여러분의 마음이 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기 전에는, 여러분은 외부로부터, 즉 두려움 혹은 불신이라는 낡은 패턴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으로 반응하게 되며, 따라서 가슴과의 연결이 끊어지게 됨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가슴과도 연결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매일 아침마다,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몸을 내면에서 느낀다고 상상해 보세요. 외향적으로는, 모든 일들이 여러분의 몸과 관련하여 일어나게 됩니다. 몸은 씻고, 먹으며, 옷을 입어야 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적인 자아(inner self)을 위해, 즉 내면으로 들어가, 참된 자신, 다시 말해 살아서, 흐르고 있는 의식을 느끼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가지세요.

자신의 몸을 내면으로부터 음미해 보세요. 다시 말해, 몸이 아름다운 도구라는 것을 느끼고, 체험해 보세요. 자신의 가슴과 연결되어, “나는 삶을 받아들일 거야, 그리고 더 이상 벽을 쌓지 않을 거야. 나는 판단을 버리고, 어떠한 삶이라 해도, 삶이 찾아오도록 할 거야.” 그런 다음, 새로운 삶 속으로, 즉 새로운 현실 속으로 들어가세요.


인간으로서의 여러분은 일반적으로, 과거로부터 여러분에게 주입된 두려움과 불신에 기초하여, 삶에 저항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부터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dig in your heels)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원하는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행동하고, 반응하며, 살아남을(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연결이 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거라는 것을 알 수 있나요?


뭔가에 저항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은 유별나게 아름다운 것에도 좀처럼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사랑스러운 시선에도, 혹은 깊은 이해나 유머, 웃음, 혹은 감정이나 울음소리에도 별로 감동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삶에 저항할 때, 여러분의 가슴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주위에 쌓고 있는 성곽을 뚫고 들어가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두려움이 지배했던, 즉 삶에 대한 두려움, 인간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모든 깊은 감정들에 대한 두려움이 지배했던 과거부터,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삶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삶에 대한 저항감을 키우는데, 종교적인 믿음체계도 크게 한 몫을 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배운 경직된 교리와 편견을 고수함으로써, 여러분은 이러한 감정과 열정 그리고 충동들을 미리 예단하여 처리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게 되었으며, 따라서 삶은 예측할 수 없게 되고, 혹독해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