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나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알고 있으며, 내 모습과 얼굴은 여러분 역사의 일부가 됨으로써, 왜곡 및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나의 본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일한 근원에 따라, 즉 가슴속의 공간, 영혼의 고향에 의거하여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구에 살고 있던 당시에, 나를 사로잡았던 것과 동일한 열망에 의해, 즉 진실에 대한, 실재하는 것에 대한, 그리고 본질에 대한 동경과 열망에 의해, 여러분도 감동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혼, 영감, 핵심에 따라(의거하여) 살아가려고 하는 열망입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삶은 여러분을 자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로 데려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면의 핵심부에 의거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이 반드시 보여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고, 자기 자신에게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모든 곳에 빛이 비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으며, 이것은 보기에도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세상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성공적인 인간이라는 이미지들, 모습들, 그리고 이상화된(idealized) 규칙들에 의거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 전에는, 주류사회의 견해와 요구에 휩쓸려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매력적으로 잘 보이기 위해,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맞추어야 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자신의 내적인 핵심(중심)과 멀어지게 되며, 이런 식으로 자신과의 접촉도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면으로 들어가, 참된 자신을 찾으라.”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는 그러한 열린 공간 속에서, 여러분은 참된 자신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빛과 어두운 부분들, 느낌과 생각들 그리고 반응들 뒤에 숨어 있는 자극(impetus : 추진력)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내면에 그러한 열린 공간을 허용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다시 그러한 소리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 “너는 선(善)해야 하고, 순종적이어야 하며, 규범(norm)에 적응해야 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다르게 보이거나, 이상하게 보여서는 안 돼”라고 말하는 두려움의 소리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또다시 자기 자신과의 내적인 대화와 그러한 열린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외부의 세계, 즉 사회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대개 두려움의 소리인 세상의 부름과 여러분을 내면으로, 다시 말해 참된 자신의 핵심으로 인도하는 영혼의 외침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러한 싸움, 즉 내부와 외부 간의, 핵심부와 외곽 간의 줄다리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가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세요. 다시 말해, 이번의 생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방식을 선택하세요. 모든 힘을 다해, 무조건적으로 그렇게 하세요! 진정한 사랑이 승리하는 깊은 곳으로 뛰어 들어가세요. 하지만 그러한 깊은 공간 속에는 바닥이 없으며, 마치 심연(深淵) 속으로, 즉 허공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타인들로부터 승인, 칭찬 그리고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며, 홀로 남겨지게 될 것입니다.


잠시, 여러분의 가슴의 중심에 존재하는 무한한 공간을 느껴보세요. 그곳에는 어떠한 판단도, 여러분이 어디로 가야 한다는 어떠한 이상화된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오로지 존재함(Being)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와 같이 많은 자유를 감당할 수 있나요, 아니면 규범이라는 끈에, 그리고 타인들이 제공해주는 가치기준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나요? 다시 말해, 깊은 곳으로 잠수할 수 있나요?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나요?


삶은 두려운 미지의 세계로 여러분이 뛰어들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좁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그리고 충분히(제대로) 살아가지 않은 것은 더 안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impulse)의 노예가 되는 것이며, “자신(you)”을 잃게 되고, 더 이상 행복도 느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만족감은 오로지 가슴의 흐름과 함께 가야만(어울려야만) 찾아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주에서 비할 데 없이 독특한 여러분의 심장박동만이 그 길을 알고 있습니다.


때때로, 만약 여러분이 길을 잃게 되면,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의 깊은 핵심 속에서 참된 자신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어두운 시기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외적인 확신들이 서서히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외적인 기준과 이상(理想)에 따라 살아가는 한, 여러분은 모든 것을 잃고, 깊은 블랙홀 속으로 추락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두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 이라고 불리는 것이지만, 이것은 단지 통과의례에 지니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문, 즉 초월해 있는 더 큰 뭔가와 이어져 있는 문 앞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은 여러분의 일상적인 시각, 즉 두려움과 낡은 개념에 길들어져 있는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두운 터널 속에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 터널의 벽조차 볼 수가 없으며, 여러분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nothingness)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허공에 잘못된 것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허공(비어 있음)은 나쁘거나, 악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허공은 의지할 수 있는 어떠한 선입견이나 기대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하게 개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허공은 여러분의 내면에 두려움을, 즉 마치 여러분을 죽일 것 같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허공이 죽이는 것은 낡은 정체성, 즉 여러분이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낡은 정체성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여러분은 죽을 수가 없으며, 사라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여러분은 내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자기 가슴의 공간만큼, 영원하며, 무한한 것입니다. 그러한 공간은 거기에(가슴속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허공과 확실성이 줄어든다는 것(lack of certainties)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이 지닌 힘과 자신이 독립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 매어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자신의 깊은 존재 속에서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으며, 여러분 앞에 갑자기 문이 나타난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한 이미지가 여러분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살펴보세요. 다시 말해, 그 문이 두렵나요, 아니면 그 문을 통과해가고 싶나요? 문들이 무겁고, 닫혀 있나요, 아니면 하나의 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으며, 반대편으로부터 빛이 비치고 있나요? 그냥 그것을 받아들이세요. 다시 말해, 여러분은 어떤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그 문 앞에 여러분이 서 있으며, 문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고 상상하세요. 문의 에너지(the energy of the gate)가 여러분을 통해 흐르도록 하세요. 문은 입구이며, 그 너머에는 - 여러분이 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 여러분의 영혼이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새로운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문 위에 손을 올려놓음으로써, 여러분은 새로운 것, 그리고 여러분의 리듬에 맞춰, 삶 속으로 흐르고 싶어 하는 것과 친숙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을 수 있는지, 즉 새로운 것, 고향의 에너지 그리고 여러분의 영혼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세요. 그 에너지가 여러분의 손을 통해, 온몸의 구석구석으로 - 너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 기분 좋은 방식으로 흐르게 하세요. 그 에너지는 머리, 어깨, 가슴을 통해 이리저리 흐르게 됩니다. 심지어 더 깊이, 즉 위장과 골반, 꼬리뼈, 두 다리를 거쳐 발로 내려가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영혼의 어두운 밤에 있다면, 비록 현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새로운 뭔가가 문 너머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새로운 눈을 가져야, 문의 반대편에 있는 그러한 현실을 볼 수가 있으며, 낡은 삶의 방식을 버림으로써, 다시 말해 여러분이 예전에 고수했던 확실성과 생존 패턴을 붙잡으려 하지 않을 때, 이와 같은 새로운 눈(안목)을 개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낡을 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될까요? 대개, 그것은 불만, 분노, 불만족 혹은 자포자기 그리고 절망감(hopelessness)을 통해서 알게 되며, 이러한 것(느낌)들은 매사가 과거와 똑같은 방식이 되는 것을 여러분이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아, 나는 지구에서 살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나는 더 이상 낡은 방식을 원치 않아, 매사가 예전과 같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로 인해 형성된 여러분의 현재 마음은 다른 방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직 상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며, 따라서 영혼의 어두운 밤이 절망적이고, 강렬해질 수도 있습니다.


낡은 것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경계선에서, 즉 어두운 터널 속에서 여러분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슴의 소리를 따라, 자기 자신에게 충실할 것인지, 아니면 외부의 소리, 즉 익숙해져 있는 과거의 두려움의 소리 속으로 다시 숨을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만약 여러분이 삶 속에서 지금 영혼의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다면, 그것과 함께 하면서, 계속 내면으로 들어가, 거기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느껴보라"라고 간청합니다. 거기에 두려움과 불확실성, 슬픔 혹은 절망감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을 판단하지 말고, 그것과 함께 하세요. 그것으로부터 숨지 마세요.


여러분이 지닌 빛은 그러한 모든 감정들보다 더 강하며, 그러한 것들은 종점이 아니라, 단지 길을 따라 서있는 정거장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거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문을 멀리서 바라보세요! 그 문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와 연결되세요. 어느 날, 그 대문의 출입구들이 활짝 열리게 될 것이며, 그것을 앞에서 지켜보세요. 지금 그것을 모두 느끼기에는 아마 너무 벅차겠지만, 잠시 그것을 멀리서 주시해보세요. 문이 활짝 열리면, 어떨 것 같나요?, 그 문을 통과해갈 수 있나요? 거기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이 여러분의 내면에서 어떤 느낌을 상기시켜주나요?

아직 문을 넘어갈 필요는 없으며, 때가 올 것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의 가능성(promise), 즉 빛의 아름다움과 즐거움 그리고 거기에 존재하는 기쁨과 편안함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그곳에서의 삶의 평온함도 느껴보세요. 왜냐하면 지금 여러분이 여행하고 있는 이 길, 즉 여러분의 두려움을 부추기고 있는, 어두운 밤처럼 느껴지는 이 길이 바로 그곳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눈앞에 펼쳐저 있는 그러한 가능성(perspective : 전망)을 간직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가는 길이 더 수월해지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내 존재를 느껴보세요. 문이 열릴 때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행복해지고, 우리가 여러분 모두와 더 깊이 하나가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자가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우리 모두가 가진 뭔가를 전체(Whole)에게로 실어 나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