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은 대승경전입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는 제목 제일 앞에는 마하 라는 말이 붙읍니다.

 

마하는 크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중국에서 번역될때는 [摩 연마할 마] 자와 [訶 꾸짖다 책망하다]라는 뜻을 지닌 하 자를 사용하였읍니다.

 

중국식 번역은 본래의 인도말은 크다는 뜻이니까 상관없고 무의미한것이다라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되면 대승 비불설이 됩니다.

즉 석가부처께서 이야기 한것이 아니면 진리가 아니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자신을 믿으라고 한적이 없으시며

불교란 법을 밝히고 다만 진리를 따를뿐

또는 마음에 따라 어떻게 삼계가 나타나고 숨기워지는지 하는 고도의 마인드테크놀로지 - 심학(心學)에 다름아니며

삼학[三學]이라 하듯이 계정혜 - 정기신을 통해

그러한 마음자리를 어떻게 하면  되찾을것인가하는 학문에 다름아닌것이며

부처님을 진리를 전하신 스승으로 존경할수는 있을지언정 신앙의 대상은 아닌것입니다.

 

그러므로 석가 부처뿐만 아리라 모든 깨달은 존재는 부처라고 보는것이 더 온전한 견해라 할수 있으며

법에 목마르고 간절히 도를 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디에서든 배울수 있는 자세

다만 법을 밝히고 진리대 진리로써 그것이 진리에 속한다면 모든 진리를 수용할수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주문이란 한번 이야기해서 듣는이가 깨우치지 못하므로 반복해서 암송하고

그 속의 의미를 깨우쳐보라는 의미가 들어있읍니다.

경전의 내용들은 또한 다차원적이어서 듣는 이의 수준에 따라 다른 내용 다른 의미로 전달될수 있으며

전하는 사람 또한 그러한 눈높이 교육을 사용하곤 합니다.

 

돈오점수라는 말이 있으나

이는 깨달음은 담박에 깨닫는다는 견해와 깨달음은 점진적으로 닦아 이루어진다는 견해

두 가지 견해가 공존하고 있는 말이 아니라

 

돈오점수라는 말 자체가 돈오라는것이 순서적으로 점수 앞에 있어서

깨달음은 담박 깨우칠수 있지만 깨닫고 나서도

그 후에도 점진적으로 닦는것이 필요하다는것을 의미하고 있는것이며

마하라는것은 이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읍니다.

 

하 <訶> - 책망하고 꾸짖는다는것은 문제가 있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문제성 있는 현재상태에서

그것으로부터 돌이키고 - 반 <般>

그와같이 자신을 갈고 닦음을 - 마 <摩> 의미합니다.

 

마하 <摩訶> - 이것만으로도 이속에 이미 성명쌍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것이며

대승이란

자신의 현재상태가 그릇되었음을 알고 그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돌이켜

자신의 마음과 몸을 함께 수양하고 갈고 닦고 연마할 때 이룰수 있고

저 언덕 너머의 그냥 지혜가 아닌 마하반야 - 큰 지혜, 참다운 지혜의 세계에 도달할수 있는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이 나온 어머니 [불모佛母] 일수 있는것은

바로 이러한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간의 이치는 순[順]이요,  역[逆]이란 성선 성불[成仙 成佛]의 도[道]의 세계의 이치라!

 

반야란 단순히 그냥 지혜이지만

마하반야란 돌이켜 연마한 지혜 - 돌이키고 연마했을 때 나오는 참다운 지혜 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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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송(海印頌)에 이르기를
순기(順機)와 역기(逆機)가 어느것이 옳바르고 그릇됨인가?

마침내는 모름지기 본래의 집으로 가리라.
오묘한 요결을 사람이 다 알수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좌중에 가득한 맑은 향기에 철수(鐵樹)가 꽃 피리 

 

 

해인송(海印頌)에 이르기를
한번 꾸짖어 물을 역류하게 하였으니,
분명한 빈(賓),주(主)관계를 경솔히 시작하지 말라
당면한 사람이 소식을 통하고자 하면,
한 밤중 북쪽 바다에 해가 돋는 머리이네!

        

             

 

 

 


 

Song Of The Reed  작곡, 연주 : Tim Mac Brian

                   음악 : 불교명상음악과 염불  http://cafe.daum.net/20243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