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영혼의 성장과 깨달음을 위해 기여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영혼은 계속하여 배움의 길을 갑니다. 우리의 영혼에 남는 것이라곤 이승에서의 경험으로부터 얻게 된 지혜 밖에 없으며, 되풀이되는 환생은 지혜의 깊이를 더하게 해 줍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지상에서의 모든 공부가 끝날 때쯤이면, 기다리던 깨달음의 순간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깨달음에 도달하기까지 꿈과 환상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진지한 탐구의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깨달음은 한 순간에 다가오지만, 결코 우연히 일어나진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평소의 꾸준한 노력을 바탕으로 하여 거두게 되는 수확입니다.

 

그 첫 번째는 ‘육체를 정화’하는 일입니다.

감각은 주인이 다스리지 않으면 제 멋대로 내달리며 주인행세를 하려고 듭니다. 스스로 도취하여 매사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습니다. 감각은 영혼이 물질세계 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임을 분명히 알고 적절하게 부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억제하면 육체의 쇠락을 부르고, 지나치게 집착하면 영혼의 은둔을 초래하게 되므로 균형 있게 잘 다스려야 합니다. 감각의 다스림은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영혼이 거하기에 쾌적한 집이 되게 합니다.

 

두 번째는 욕망과 감정을 다스려 ‘감성체를 정화’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자신의 실체로 생각하고, 감각에 의해 받아들인 것을 사실로 여기고 있는 한, 욕망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욕망과 감정은 모든 것을 분리된 것으로 보는 무지에서 생겨납니다. 대립하고, 경쟁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하고, 그러면서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이것은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전에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조절하고 정화할 수는 있습니다. 그 욕망이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도록 방향을 돌려놓을 수 있으며, 그 감정을 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올바른 생각으로 ‘지성체를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생각에는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 조화로운 생각과 치우친 생각, 맑은 생각과 탁한 생각 등으로 온갖 양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아 긍정적이고, 조화롭고, 맑은 생각으로 자신을 고양시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비록 관념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깨달음의 언저리에까지는 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체, 감성체, 지성체의 세 가지 차원을 차례차례 정화함으로서 우리는 비로소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네 번째는 드디어 ‘명상의 시간’이 도래하게 됩니다.

명상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생각은 지성체가 육체인 두뇌를 통해 하는 일이지만, 명상은 여러분의 참 주인인 영혼이 행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언어와 문자로 하게 되지만, 명상은 직관을 통해 ‘실제로 어떤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 토론하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랑의 상태가 되는 것이며, 깨달음에 대해 관념으로 궁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깨달음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울이 아무리 맑다 하더라도 그 안에 비친 것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듯이, 생각은 아무리 백척간두 산꼭대기까지 올라도 여전히 생각일 뿐입니다. 명상은 거울이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며, 백척간두에서 허공으로 몸을 날리는 것입니다. 명상은 사물 속으로 들어가서 사물과 하나가 됩니다. 꽃과 하나가 되고, 나무와 하나가 되고, 세상과 하나가 되고, 우주와 하나가 되고, 신과 하나가 됩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삶 속에 있으면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사물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합니다. 관념이 그들을 삶과 분리시키고 사물들과 하나로 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명상은 이를 치유합니다. 스스로에게 자신의 삶을 돌려주며 존재의 빛을 회복시켜 줍니다. 명상 속에서 우리는 삶과 하나가 되고, 모든 것은 싱싱하게 살아나게 됩니다. 명상 속에서 사물들은 더욱 빛이 나고 윤택해집니다.

 

명상은 관조이자 실천입니다. 명상은 모든 종류의 삶 속에서 ‘깨어 있음과 동시에 삶과 함께 생동하는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만이 아니라 갖가지 삶의 현장 속에서도’ 명상은 살아 있습니다. 명상은 사랑 그 자체이기에 그것은 곧 사랑의 행위가 되고, 우주만물 그 자체이기에 만물의 흐름을 나의 흐름으로 느끼게 됩니다. 보고, 듣고, 부딪히고, 생활하고, 추구하는 삶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명상이 되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앎과 동시에, 삶의 모든 것이 실상의 흐름이기도 함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우리는 깨달음의 빛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감각을 다스리고 관념의 벽을 넘어 명상에 이르기까지, 조각하는 예술가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갈고, 닦고, 다듬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최후의 순간에 ‘길도 없는 허공에서 거울도 없이 세상을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깨달음 속에서, 깨달음 자체가 되어, 진정한 영적 존재로서의 새로운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복 본] 중에서

(펌) http://cafe.daum.net/sinmunm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