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집착하지 말라. 집착하면 스스로 지옥을 만든다. 집착이 지옥이다. 집착 없는 의식은 항상 천국에 산다. 기분과 함께 움직여라. 기분을 받아들여라. 변화를 수용하라. 그러면 불평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삶이란 본래 그렇게 변화는 법이다. 만물은 그런 식으로 존재한다. 아무리 대항해도 '변화'라는 삶의 법칙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


젊은 시절에는 감정 상태와 기분이 다르다.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똑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 늙은 사람이 그런 기분을 가지면 아주 어리석어 보일 것이다. 어떻게 늙은 사람이 젊은 시절과 똑같은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이 변했다. 젊었을 때 그대는 로맨틱하다. 경험이 미숙한 몽상가다. 그러나 늙으면서 모든 꿈이 사라진다. 여기에 나쁜 것은 없다. 꿈이 사라지면 실체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는 더 많은 것을 이해한다. 이제 그대는 시인(詩人)과 같은 성향에서 멀어졌다.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잘못된 점은 없다. 꿈은 하나의 기분이고 계절이었다. 계절은 변하기 마련이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지점에 도달했는지를 알고 그 상황에 충실해야 한다.


그대의 변화하는 자아에 충실하라. 그것이 유일한 실체다. 붓다가 자아는 없다고 말한 까닭이 그것이다. 그대는 흐르는 강이다. 고정된 자아는 없다. 그대 안에서 불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붓다는 인도에서 추방당했다. 왜냐하면 인도인들, 특히 브라민과 힌두교인들은 아트만(ataman)이라는 영원한 자아를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원한 어떤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붓다는 오직 변화만이 영원하며, 그 외에 아무 것도 영원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대는 왜 영원한 것이 되려고 하는가? 파도가 오고 간다. 이것이 바다가 살아 있는 비결이다. 파도가 출렁거리지 않으면 바다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죽을 것이다. 바다가 죽어 버릴 것이다. 모든 것은 변화를 통해 살아간다. (헤라클레이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