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신에게) 맡겨 버리면 질문하는 자도 없고 생각해야 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나'라는 뿌리생각을 착파하여 생각들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더 높은 힘'에 무조건 맡겨버리십시오.


완전한 순복이 되기 위해서는 그대 자신의 욕망이 전혀 없어야 합니다. 그대는 신이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만족해야 하는데, 이는 그대 자신의 욕망을 전혀 갖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해탈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근원을 파고들어서 그 근원으로 녹아드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 자신을 신에게 완전히 던져버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 방법에 의해서 그대는 신만이 실재하며 에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확신을 점차 발전시켜 나가게 됩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똑같은 목표에 이르게 합니다. 완전한 순복은 진지 또는 해탈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대가 어느 길을 가건, 그대는 그 하나의 길 안에서 그대 자신을 잃어버려야 합니다. 순복은 '당신이 전부이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하는 단계에 도달할 때에만 완전해집니다. ['내가 그다'하는 긍정]에서는 이원성이 있고, 순복에서는 비이원성이 있습니다. 실재에 있어서는 이원성도 없고 비이원성도 없으며 존재하는 것만 있습니다. 순복은 쉬워 보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 입으로 '나는 순복한다' 하면서 자기의 짐을 그들의 주主에게 넘겨주고 나면, 자기가 하고 싶은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대가 순복한 뒤에는 그대에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대 자신의 의지란 전혀 없어야 하며, 주主의 의지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에고가 죽어버린 뒤의 상태는 진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대가 어느 길로 가든, 그대는 진지 또는 (신과의) 합일에 도달해야 합니다.


자기한테 가장 쉬워 보이고 가장 마음이 끌리는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모든 길은 다같이 좋은 방법들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진아 속에 에고가 합일되어 사라지게 한다는 같은 목표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헌신 수행자가 순복이라고 하는 것을 자기탐구자는 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두 사람 다 에고를 그것이 일어난 근원으로 끌고 가서 그 속에 녹아들도록 하려는 것뿐입니다. (마하리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