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욕망의 대상인 물질에 집착하지 말라고 꾸준히 가르쳤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들을 획득하거나 소유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대상 또는 경험을 손에 넣거나 유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다시 말해 찰나의 기쁨이나 고통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모든 대상이 "일시적"이고, 모든 대상이 덧없다. 그것들은 움켜잡을 수도 없고, 변질되거나 소멸되지 않도록 막을 수도 없다. 욕망에 지배당해 이런 것들에 집착하면, 인간의 자유는 제약되고, "내 것을 지키거나"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경쟁과 탐욕, 두려움, 질투에 빠지는 결과를 불러온다.

바바지의 가르침에 따르면, 참된 자유란 감각적 대상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초월할 때라야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기쁨이나 고통, "얻음"이나 "잃음"에 흔들리지  않게 되고, 구하는 것도 지킬 것도 없어진다. 사람들은, 이런 상태에서 자유로이 타인에게 봉사할 수 있고,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만족감과 행복과 구원을 발견할 수 있게되며, 나아가 평온하고 균형 잡힌 내심(內心)에서 흘러나오는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 부와 "권능"이라는 위대한 재능까지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삶의 이런 상태를 추구할 준비가 되어 있거나,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이런 가르침과는 정반대 되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무 집착을 삶의 궁극적 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해도, 욕망의 지배력은 느슨해지고, 좀더 균형 잡히고 초연한 인생관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당장의 깨달음을 열망"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탐닉하지 않으면서, 즉 욕망에 지배당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면서, 쾌락과 고통을 체험하고 욕망에 충족해보는 것은 전혀 해롭지 않다.

어느 날 저녁 바바지는 말했다.          
"너희도 쉬르디 마올라나를 알 것이다. 그는 이슬람 통치기간에 인도에서 살았다. 그는 지금도 여러 곳을 순회하면서 인류를 돕고 있다.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와서 스리 마하프라부지(바바지-옮긴이)를 통해 말한다. 그는 "나"와 "내 것"이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가슴을 장막으로 가리고 있다고 한다. 인간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 되고 말았다. 마음이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평화가 깃들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세상에 우주적 봉사와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만큼 큰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사람들은 지극히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남을 거리낌없이 죽이고 해칠 정도로 타락 해 있다. 너희 모두는 세상의 부패한 법을 없애고, 참된 법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른 날 저녁에도 바바지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모든 이는 자기나라를 천국으로 여기고, 머리 속에서 "나"와 "내 것"을 지워야한다. 국가와 인류에 대한 봉사에 모든 노력을 기울려라"라고 바바지는, 개인적 기쁨이나 이익 추구라는 사람들의 목표와 관심을 타인에 대한 이타적 봉사로 돌리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개인적 만족과 이익에 대한 과도한 갈망은 필연적으로 경쟁심과 탐욕, 질투, 분노를 조장하고, 이기심과 물질에 대한 집착을 강화시킨다. 성자들의 경험의 산물인 경전에서는, 이 모든 것을 "요가(합일)로 가로막는 주된 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일신(一身)의 범위 너머를 보면서 타인에 대한 봉사에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행위와 생각은 부정적 특성들을 약화시키고, 사랑과 봉사, 내면의 평화와 조화, 그리고 전 우주와의 합일이라는 특성을 강화시키게 될 것이다.

두려워할 여지가 없다. 인간은 이 세상에 용감하게 일해야 한다. 마하리쉬 마칸데야는 대담해야 한다고 했다. 전투(물질 삶에서든 영적 삶에서든)에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대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기에 그는 삶의 어떤 전투에서도 항상 승리한다.

이제 바바지는 또 다른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는 "나"와 "내 것"이라는 감정을 마음에서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너희는 전사와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용감하게 전진해야 한다. 자기 혈족에 대한 집착은 인간을 저급하게 만든다. 너희 모두가 이 우주 전체에 속해 있거늘, "나"와 "내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는 한 우주 가족으로 결합하여 함께 전진하여야 한다.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이것은 한사람의 관심사가 아니라 전 우주의 관심사이다. 참된 인간이란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은 인류애의 자질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다.      
  
1983년, 바바지는 내(저자:라데샴)가 집착을 버리는 이런저런 경험을 겪도록 밀어 붙였다(나만이 아니라 영적인 길을 선택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했다). 그런 바바지의 시험으로 혼란스러워하면서 고민하는 나는 바바지에게, "무 집착"의 정의는 무엇이고,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물었다. 바바지는 이에 대해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한 곳으로만 주의를 모의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네 목표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극기여 신성 실현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런 다음 몸이 좋지 않은 바바지를 대신해 옆에 서 있던 샤트르지가 내게 보완 설명으로 일화 하나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석카데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현자 비아샤에게 이와 비슷한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비야샤는 자나카 왕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시켰고. 질문을 받는 자나카 왕은 석카데바에게 우유를 가득 담은 사발을 들고 미틀라 시를 한 바퀴 돌고 오게 시켰다. 그리고는 칼을 든 경호원 두 사람을 석카데바와 동행하게 하면서, 석카데바가 우유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당장에 그의 목을 치라고 명령했다.
          
석카데바는 우유를 가득 찬 사발을 들고 걸어나갔다. 몇 시간 후 도시를 돌고 돌아온 그에게 왕은 거리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석카데바는 우유를 엎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 즉 마음속에 매달려 있던 죽음의 칼에만 온 정신이 쏠려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나카 왕은 그게 자신의 목표에 완벽하게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하며, 이것이 바로 삶의 모든 것에 대한 "무 집착"이라고 덧붙였다.

바바지는 다시 한번 "완전한 집중, 그리고 강한 믿음과 결심! 네가 목표에 집중한다면 나머지 것들은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무 집착"을 이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옴 나마하 사바이 (진리와 함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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