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명 (生 命) 3.


21. 아이처럼 살자

아이들은 생명을 풍성하게 삶으로 행복하다. 저들은 생명에 아무 제한도 두지 않는다. 우리가 생명에 제한을 가하는 때 우리의 풍성한 생활은 중지되는 것이다. 생명은 그 자신을 제한할 수 없다 오직 생각의 태도가 그것을 향하는 외에는 제한될 수 없다. 생명에 대하여  두 사람 같은 비젼을 가질 수 없다. 이것은 아래와 같은 말로 자주 표현되었다. "아이와 현자(賢者)만이 행복하다. 그 이유는 아이에게는 물질적 가치를 물질적 입장에서 결정하는 일이 발달하여 있지 않고, 현자는 물질적인 것에는 가치가 없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들에게는 외형은 고려 대상이 아니며 생명 그대로 사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인생의 가치는 내 속에 있는 참나, 즉 내부대사를 발견하는데 있고, 속세 중에서는 찾을 것은 없다. 속세에는 그 자체의 고유가치는 없고 눈 뜬 의식에 의하여 받는 만큼의 가치밖에 없는 것이다.    

23. 항상 전체를 보라

어떤 한 인간이 몹시 좁은 벽 구멍으로 인생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명의 모든 것을 보았다"라고, 그러나 그의 눈은 바위로 된 언덕을 보았는지 모른다. 다음 사람은 나무만 보고, 그 다음 사람은 돌아다니는 동물만 보았다. 생명이라는 광막한 우주를 작은 구멍으로만 엿보아 가지고 자기가 본 것만이 전부라고 자기최면에 빠진 맹신 자에게는 거론할 것이 못된다.

이 같은 태도로 생명 전체를 깨닫고자 하는 것은 잘못이며, 우주는 유일 무한한 생명이며, 한없이 다종 다양한 구체화요, 표현임을 잘 보아야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비젼은 확대되고, 모든 생명을 받아들여 우리를 제한하는 것은 없게된 것이다.

대사(大師)들은 결코 의식 있는 생명체. 즉 동물은 먹지 않는다. 의식 있는 생명을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은 인간은 생명의 모든 요소를 그의 의식에 동화시킬 수 있으며, 이 모든 요소들과 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의식적인 생명을 조금도 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도인의 동물 존중 이유 외에, 인도인은 인간이하의 동물을 두려워하는가 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 인도에서는 우주에는 한 생명밖에 없다고 교훈 하기는 하지만, 인도인 개인 개인이 다 대사라고 할 수 없고, 교훈 한 전부를 충분히 파악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미국사람도 교훈한대로 전부를 충분히 파악하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한가지이다. 전기와 같이 동물공포에 얽매여 있는 것은 최하급에도 극히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그것은 저들이 동물에 대한 공포를 덕(德)으로 생각하게끔 교훈을 받았기 때문에 동물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생명의 위대한 보편적인 활동이야말로 생명의 실상을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 활동은 최고의 이념과 가장 깊은 동경(憧憬)을 굳게 잡을 때, 그것을 통하여 그 사람의 성정 속에 나타난다. 생명을 자기의 제한된 척도로 재는데서 나타나는 것도 또한 제한 되게 된다. 자기가 필요로 하는 재물은 이 보편 생명에 의뢰할 것이다.      

24. 자기 갈 길은 자기가 정할 것.

그렇다면 대사들은 왜 그런 사람들을 그 같은 상태에서 향상하도록 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저들이 향상케 하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대사들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대사라도 저들에게 자기 마음을 주입할 수는 없다. 다만 자기들이 걸어온 길을 보여줄 뿐이다. 저들에게 그렇게 까지 하여도, 그 길이 저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언젠가 알고 행할 때까지 자기들의 길을 걷게 할 수밖에 없다.

인도에서는 그들 대중보다는 높은 계층의 사람, 예컨대 위대한 마하라쟈(藩王)까지도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향하여 노력하고 있으나. 그 마하랴쟈라 할지라도 대중을 대신하여 자기가  미망(迷妄)을 극복하여 줄 수는 없고 또 대중을 깨닫는 자로 변하게 할 수도 없으니, 그 같은 노력은 항상 본인 각자가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 각자의 표현의 권리를 침해하면 생명 본래의 활동을 방해하는 일이 되므로 침해해서는 안되며 또 침해할 수도 없다. 우리가 향상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에 따르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노력에 의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는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얻으려는 것은 자기의 성격과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다.  

25. 금욕과 고행

대사가 극단의 금욕이나, 고행의 생활을 하고 있는 줄로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 같은 생활방식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본 일이 없다. 대사들 중에는 허리에 천(腰布)을 둘려 몸만 가린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사회의 최상층의 분도 있다. 그러나 사람과 단절하여 혼자 사는 분은 한 분도 없다. 세계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하여, 더 훌륭한 세계를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운둔 생활을 하는 분이 얼마 있기는 있어도, 그것은 대사의 전체 수에 비하면 극히 적은 편이다. 그러한 대사들은 특수의 목적으로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특별한 분들이다. 그러나 극단의 금욕이나 고행은 결코 하지 않는다.      

26. 가짜대사

어느 특정 목적을 가지고 어느 기간만 금욕생활을 하는 요기를 볼 수는 있으나, 그 때문에 저들이 자기 암시(暗示)에 빠지는 일은 결코 없다. 요가를 하는 것은 큰 견증(大見證)을 얻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인도의 소위 성인(聖人)은 대개가 금욕과 고행을 하고 있으나 보통 저들은 걸인, 걸식인으로 대사는 아니다. 그 대다수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아주 더럽고 불결하다. 말하자면 저들은 인류의 기생충이며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며 대사는 아닌 것이다. 어떤 남자가 다만 만도람을 부르면서 돌아다니거나 결과부좌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대사라고 할 수는 없다.    

27. 대사의 무한공급

최상의 경지에 다 달은 대사들이 걸식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대사들은 인류의 향상을 위하여 전시간 그 몸을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에게 베풀기 위하여서라도 구하고자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나 타인에게 베풀 것도 이미 실상에 있어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기 위하여 구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밖에 나가서 늘 사람들을 돕고 있기 때문에 대사임을 알게된다. 인도에는 부단히 주고 있는 사람들이 몇 천명이 있으나 그중 어느 한사람도 누구에게서 한푼이라도 받는 것은 본 일이 없다. 자기를 "성자"라고 일컫는 무리들은 자칭 성인에 불과하며 대사들과는 아무 인연도 없는 것이다.
      
28. 참사는 방법

생명이라 함은 주는 일이다. 무한한 공간을 자유자재로 흐르고 있는 생명을 갖는 것은 모든 사람의 특권이다. 그의 삶의 방법은  본원으로부터 가지고 나와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주고 그들 자신이 발견한 생명=인생=생활을 저들도 또한 발견할 수 있도록 고취하는 일이다. 이것은 대사들만의 일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다 해야할 일인 것이다. 이것만이 참으로 사는 방법이지, 주위 사람들에게 받는 것은 아무런 생명=인생=생활이 못되며, 도리어 생존을 부단히 축소케 할 뿐이다. 물질 세계에서 생명을 구하려 하는 것은 그 것을 잃는 일이다.

생명이란 활동이고 자기표현이며 주는 일이다. 호흡할 때는 숨을 내쉬는 것이 필요하다. 그와 같이 살기 위해서는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본원에서 받고 본원에서 최선의 모습(形)으로 줄 것이다. 어떠한 원리라 할지라도 그것을 받는데서 먼저 자기 의식 중에 취하고, 그 다음 외부에의 행동에 의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생명의 행정에 있어서도 꼭 그와 같다. 주지는 않고 받기만 하고, 받지 않고 주기만 한다면 과잉과 소멸 때문에 생명을 정체  시킨다. 자기의 본원에서 받고 자기의 재능을 다시 크게 표현하는 것이 생명의 사는 법이다.
(끝)  

                                            초인생활 下/선경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