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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법칙 및 현상에 대하여



신지학 용어집에서는 “싸이키(Psyche)”를 “동물적이고 지상에 속한 혼, 하위 마나스”로 정의한다. 그리고 “싸이키즘(Psychism)”을 “최면상태에서 수용하는 것, 영감을 받은 예언, 높은 차원의 민감성 및 영매와 같은 모든 종류의 정신적인 현상을 느슨하게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용어”로 정의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 말은 인간의 혼과 신성한 혼의 힘들과 잠재성이 현현한 모든 단계를 포괄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힘들은 모든 인간 속에 잠재되어 있다고 신지학 철학은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현생이나 과거 생에서 그 힘들을 개발하기 위하여 취한 방법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표면에 가까이 있는 것이나 우리들의 유산 전체일 뿐만 아니라 미래에 개발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들 사이에는 소위 “초인간적인” 힘들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 있으며 다음 아인종이 점점 더 많아질수록 이런 능력들이 일깨워질 육체 속으로 점점 더 많은 개개인들이 환생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인간적인 힘들이다. 심령 영역에 속하는 것을 우연으로 돌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의 “현상”들이 있다는 것을 졋지 씨가 환기시켜 주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예감이나 처음 만나자마자 친한 우정관계가 되는 경우 혹은 어떤 꿈들은 이 내면의 힘들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우리들이 어느 정도 투시적인 것이 없다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말들과 함께 경고도 잊지 않는다. 즉 심령적인 힘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며 연관되어 있는 법칙들을 완전하게 알지 못한 채 실험하면 엄청난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신지학 운동의 세 번째 목적은 “인간 속에 잠재되어 있는 심령적 법칙들과 대자연의 설명되지 않은 법칙들을 조사하는 것”이며 법칙들을 조사하는 것에 강조점을 둔다.

[포럼]에서 졋지 씨가 말하길,


“조사”라는 말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실제 물리적인 실험을 통한 조사를 의미하거나 그 현상의 근저에 있는 법칙들과 철학을 조사하는 것. 신지학 협회는 전자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H.P.B. 같은 분들이 쓴 철학에서 실험자에게 위험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험 상으로 그녀가 말한 관점들과 그녀를 따른 사람들이 그 견해를 지지한다. 심령계를 조사하는 것이 유리한 경우는 먼저 도구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리고 순수함과 미덕의 선상에서 인격을 갖추어야만 가능하다. 만약 이런 것이 없다면 실질적인 방법으로 어떤 올바른 조사도 가능하지 않다.


무엇이 심령 능력이고 개발하는 방법은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이런 힘들은 아스트랄체의 잠재된 힘들을 개발하거나 자유롭게 한 결과이다. 그리고 아스트랄체에 대해서 말한 것을 다시 한 번 리뷰 해보기를 권한다. 아스트랄체의 모든 감각들의 힘은 육체의 감각들보다 훨씬 강력해서 개발되었을 때 훨씬 멀리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항상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만약 우리가 그런 힘들을 올바른 방법으로 개발하지 않았다면 어떤 이점을 얻지도 못한 채 길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신지학은 말한다.





이전에 말했듯이, 동양의 진정한 심리학은 서양에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도덕 의식, 상태 및 동기들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들은 우리의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인 상태에 영향을 주고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진화와 개발은 항상 내면의 세계 혹은 높은 세계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심령 능력의 개발도 같은 방식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힘들이 자연스럽게 혹은 부자연스럽게 열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동기라는 요소이다. 만약 동기가 순수하고 이기적이지 않다면 이런 힘들은 적당한 때에 하타 요가와 같은 부자연스러운 연습을 하지 않고도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개발을 완전하게 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 5장에 있는 [집중의 문화]에서 인용한 것을 다시 한 번 보라. 그런 노력에 무엇이 수반되는지 작은 그림을 제시해 준다. 우리가 더 성공하기를 기대하기 전에 욕망과 욕정적인 성질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제시해 준다. 이런 힘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투시력과 투청력은 무엇인가


이 힘들은 명확하게 보고, 명확하게 듣는 힘들이다. 아스트랄 인간의 감각들에게 속하는 자연스러운 힘들이다. 일상 생활에서 그것들은 육체의 외적인 감각들에 지배되고 묶여있어서 그 힘들을 충분하게 사용하는 것은 드물고, 종종 “돌파구”를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필요할 때 그것들을 불러낼 수 없다. 그것들은 내면의 세계에서 항상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는 가끔 번쩍이는 통찰력이나 느낌, 경고 혹은 꿈 속에서 혜택을 얻는다. 그러나 우리가 외부의 감각들을 닫아 버리지 않는 한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물질의 환영을 통해서 보고 모든 생명의 하나됨을 실제적으로 완전하게 인식했을 때만 이런 힘들을 정상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이런 활동의 세계에 속한 법칙들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시력과 관련이 있는 환영들 때문에 믿기 어려운 실습이라는 상태에 있다. 그것은 이런 힘들과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경험으로 보면 진정한 통찰력이 없다면 과학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메즈머리즘과 상위 자아]라는 글에서 졋지 씨는 이런 투시력을 상위 자아 혹은 윤회하는 자아의 시야로 오해하지 말 것을 환기해준다. 그가 말하길,



투시력과 비슷한 현상들은 내면의 인간에 대한 지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렇기 때문에 상위 자아가 관련 있다고 말하는 것은 위대한 사상을 격하시키는 것이고 요점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면의 아스트랄 인간은 우리가 알고 잇는 것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작용하는 진정한 기관들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눈과 귀가 거기에 있다.



그것은 물질계 보다 높고 미세한 세계에서의 시야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를 넘어선 자아 자체가 속하는 세계와 힘들이 있다. 내면의 개발은 외적인 현현이 있기 전에 시작되어야 한다고 대자연은 요구한다. 그런 힘이 물질계에 나타나기 전에 우리들 마음들 속에서 분명하게 보아야 하고, 만물 속에 있는 영을 보아야 하며, 다양성 속에 있는 단일성을 보아야 한다. [씨크릿 독트린] 46 페이지에서 H.P.B.는 말하길, 진정한 투시력은 “멀리 있는 것을 보는 힘이 아니라, 영적인 직관 능력으로 그것을 통해서 직접적이고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응집력, 분산 그리고 비가시성이 무엇인가


응집력은 물질의 원자들을 끌어 모아서 견고함을 주는 힘이다. 그것은 조절된 의지의 힘이고 그 힘이 없어지자마자 원래의 흩어진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한편 부착력은 대자연의 견고한 물체들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분산의 법칙을 이해하는 초인들은 의지의 힘으로 단단한 물체의 원자들을 분산시켜서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단단한 물체를 통과해서 먼 곳까지 이동시킬 수도 있다. 이런 힘이 없어졌을 때는 그 물체는 원래의 단단한 형상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단단한 반지를 다른 물체로 통과시키는 것이나 어떤 물체들을 사라지게 하거나 혹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과 같은 현상들에 대한 설명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이런 힘들을 의식적으로 개발한 초인이나 이런 법칙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하타 요가 수련을 통해서 이런 힘을 개발한 인도 고행자 혹은 아스트랄계에 있는 어떤 존재들에 의해 이용되는 영매가 이런 현상들을 할 수 있다. 가르침의 여러 곳에서 “오컬트 화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이것은 이런 힘들을 완전하게 조절할 수 있기 전에 통달해야 할 과학들 중에 하나라고 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은 전기와 자성 그리고 극성에 관한 한층 고차원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질의 응답]에서 크로스비 씨는 설명한다.


전기력의 위대한 법칙들이 이런 모든 작용의 배후에 있다. 응집력은 하나의 물체에 있는 입자들에게 작용한다. 현재 그 물체를 구성하는 지성들의 진동들을 대표하는 진동율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물체는 그런 형상을 유지시키는 전체 화음이 있다. 일단 이런 화음을 알면 한 톤 더 높은 소리를 낼 수 있고 그러면 그 물체는 사라질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심지어 초인도 식물 이상의 어떤 유기체도 사라지게 하거나 형체를 변형시킬 수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형체도 마찬가지이다. 숙달된 초인은 자신의 육체의 입자들을 분리해서 보이지 않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성의 흐름을 따라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공중부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공중부양은 육체나 외적인 다른 체들에 방해를 받지 않을 때 내면의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힘이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자연법칙들에 대한 지식으로 가능하다. [신지학의 대양] 136페이지 에서 말하길:


육체를 공중부양시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중력에 반하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을 완전하게 숙달했을 때는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법칙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중력은 단지 전체 법칙의 반이다. 동양의 성인들은 중력을 인정한다. 그러나 올바른 용어는 인력으로 반발에 의해서 나타나는 법칙의 나머지 반에 해당된다. 그리고 두 가지는 모두 전기력의 위대한 법칙들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다. 무게와 안정성은 극성(polarity)에 달려있고 지구와의 관계에서 어떤 물체의 극성이 변할 때 그 물체를 떠오르게 될 것이다.

신지학 문헌에서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데 사용된 거대한 화강암들을 먼 거리까지 이동시키는 데 사용된 이런 비슷한 방법을 제시했다. 일단 극성이 변하면 다루기에 충분히 가벼워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건설할 때는 이집트인들인 우리들은 내면의 능력들을 사용했었다.





낙하 혹은 투하가 같은 힘들에 의해서 조절되는가


1800년 신지학 운동 초기에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대스승들에 의해서 투하된 많은 편지들과 메시지들이 있었다. 그 당시는 오늘날처럼 그렇게 많은 문헌들이 없었고 이런 “낙하(precipitations)”들이 오컬트 철학의 입문일 뿐만 아니라 대스승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낙하의 법칙에 대한 지식은 편지 이외에 다른 단단한 물건들을 만드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메시지들은 공기로부터 탄소를 낙하함으로써 형성된다. 다른 물질들이나 금속들 혹은 화학물질들도 공기 중에서 부유 상태 속에 있게 할 수 있으며 필요로 하는 어떤 것이든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신지학의 대양]에서 졋지 씨는 흥미 있는 설명을 제시해 준다: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 중에 물질이 부유 상태 속에 있다. 보이거나 아직 낙하하지 않은 모든 물질 입자는 가능한 모든 형태들을 지나왔다. 그리고 초인이 하는 것은 아스트랄 빛 속에 존재하는 원하는 어떤 형태를 선택해서 의지와 상상력의 노력으로 물질을 낙하하여 그 형태에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체는 어떤 다른 과정들이 사용되지 않는다면 서서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만약 여기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이런 과정들을 사용한다면 그 물체는 영원히 그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종이나 다른 표면에 메시지가 보이도록 원한다면 같은 법칙들과 힘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림이나 글자의 모든 선의 분명한 이미지를 마음 속에 그리고 나서 두뇌에 의해서 그려진 범위 안에 떨어지도록 공기 중에서 안료를 끌어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명제에 다다른다: 즉 인간의 의지는 가장 강력하고 상상력은 역동적인 힘을 가진 가장 유용한 능력이다.


어떻게 해서 상상력이 그렇게 중요한가


“상상력과 오컬트 현상”에 대한 글에서 졋지 씨는 진정한 상상력은 공상하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고귀한 능력들 중에 하나”라는 점을 지적한다. 계속해서 그가 말하길, “오컬티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 언제든지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상상력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이런 능력을 수련하지 않으면 다른 종류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어떤 종류의 오컬트 현상을 실행할 수 없을 것이다.”


“동양의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힘이다. 그들은 당신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없는데 뱀을 보게 만들거나 아이가 밧줄을 타고 올라가서 사라지는 것을 보게 만들 수 있다. 이 사람들은 그들이 이런 능력을 쉽게 완전하게 만드는 이런 종류의 수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최면술사도 환자가 보게 하거나 보지 않게 하는 경우들에 이런 능력을 사용한다.

H.P.B. 여사는 “최면과 다른 형태의 감응(Fascination)들과의 관계”라는 글에서 흥미 있는 설명을 한다.


상상력은 우리들 삶의 모든 사건에서 강력한 도움이 된다. 상상력은 믿음에 바탕을 두고 움직인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뛰어난 화가들이다. 이 둘은 의지가 삶의 길에 뿌려져 있는 장애물들과 반대라는 바위들 위에 다소 깊게 그릴 수 있도록 스케치를 준비하는 화가들이다. 파라겔수스는 말한다: “믿음이 상상력을 굳게 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의지를 확고하게 한다. 마법이라는 예술이 불확실한 것은 인간이 완전하게 상상하지 못해서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마법의 예술들은 완전해질 수 있다.” 우리들의 고통과 질병의 3분의 2는 아니더라도 아마도 반은 우리들의 상상력과 두려움의 결과이다. 두려움을 파괴해버리고 상상력에 다른 성향을 주어라. 그러면 나머지는 자연이 알아서 할 것이다.



먼 거리에 있는 마음들이 어떻게 통할까


이것은 두뇌를 구성하는 분자들과 정신의 생각들을 영향을 받는 사람의 정신의 진동에 일치시키는가 하는 문제이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전달 받는 사람은 보내는 사람의 정신 속에 있는 생각들을 느끼거나 보게 될 것이다. H.P.B.는 “나의 책들”이라는 글에서 말한다: “공간과 거리는 생각한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두 사람들이 심령적 자성적으로 완전히 일치하고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초인이라면, 그러면 생각을 전달하고 전체 페이지를 받아 쓰는 것이 수 천 마일 떨어져 있더라도 옆방으로 두 마디를 전달하는 것처럼 아주 쉽고 이해하기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녀는 [신지학의 열쇠]에서 말하길, “두 사람의 정신이 상호 공명하고 그 정신들이 기능을 발휘하는 도구들이 자성적으로 그리고 전기적으로 서로 반응한다면,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자유자재로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정신은 만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고 그 거리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면, 두 정신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차이는 상태의 차이뿐이다.”
 
이것은 정신을 읽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 정도까지 수련한 사람에게는 정신을 읽는 것이 가능한 일이다. 일단 단련된 정신이 다른 사람의 정신으로 향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생각들과 인식들이 모두 다 보이게 된다. 신지학에서 말하길, “이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사기꾼이나 그런 일을 할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권리들을 침해하는 것이고, 어떤 초인도 그렇게 하지 않으며, 그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보는 순간 자신의 정신을 거둬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힘을 가졌지만 윤리가 결여된 사람은 카르마의 법칙이 물질계에서 강도들에게 작용하듯이 내면의 세계에서도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싸이코메트리란


[아이시스 언베일드(Isis Unveiled)]에서 H.P.B.가 말하길, “현대 시대에 가장 흥미 있는 발견들 중에 하나는 어떤 부류의 민감한 사람들이 손에 가지고 있거나 이마에 대고 있는 어떤 물체로부터 이 물체와 이전에 접촉했던 사람의 모습이나 성격 같은 인상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의 발견이다. 졋지 씨는 “싸이코메트리”라는 글에서 그것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 물체와 연관되어 일어났던 모든 것을 파노라마식으로 영적 혹은 정신적인 눈 앞에 살려내는 힘.”


 
신지학 운동 초기에 덴튼 교수와 그 분의 부인인 엘리자베스는 1873년에 출판된 [물체의 혼(The Soul of Things)]에서 놀라운 많은 싸이코메트리 사례를 보여 주었다. 고대의 사원이나 교회에서 나온 조각을 이마 위에 대면, 덴튼 부인은 고대 시대에 그 물체가 있었던 건물뿐만 아니라 그 장소와 연관된 느낌들과 활동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뼈나 이빨로부터 유사 이전의 동물들을 묘사할 수 있었으며, 그녀의 많은 통찰력은 고고학이나 역사에 의해서 입증되었다.


 
지금까지 연구에서 우리는 모든 물체는 살아 있건 죽어 있건 내면 혹은 아스트랄 물체의 외피에 불과하며, 이 내면의 부분은 아스트랄 빛의 한 단면으로 그것에 일어난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을 저장한다. 이런 기억들은 지울 수 없으며 아무리 오래 전에 이 인상이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내면의 눈에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 분야에서 초기 실험 중에 하나는 뷰케넌 교수의 실험이다. “강박관념의 한 사례”라는 글에서 H.P.B.는 그의 연구에 대해서 말한다. “증거를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인간 속에 있는 뷰케넌 교수가 발견한 싸이코메트리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들에 의해서 집들과 사는 지역, 쓰는 종이, 입는 옷과 그 물질이 존재하는 우주 에테르(Universal Ether)에 작용하는 미묘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이 능력의 도움을 통해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한 영향력으로, 사람들이 살아서 영향력을 주었던 시대부터 심지어 가장 먼 시기까지 인지할 수 있다. 


 
졋지 씨는 “싸이코메트리”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 속에 있는 영 혹은 어떤 사람들은 섬세하게 나누어진 상태 속에 있는 물질로 알고 있는 그것을 과학이 인정하기 시작할 때 그 때 싸이코메트리를 연구하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고고학과 인종학 연구에 상상할 수 없는 휘황찬란한 빛이 드리워질 것이다.”
  

※ 기본 자료실에 [싸이코메트리(Psychometry)]라는 글 참고.



심령주의가 맞는 이름인가


지난 세기 하반부에 강신술, 영매 현상들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컬트에 대한 굉장한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떠난 사람들의 진정한 영과 접촉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심령주의”라고 불렀다. 비록 H.P.B.가 거의 관통할 수 없는 물질주의에 틈을 내는데 이런 심령방법들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했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인간의 영은 죽게 되면 이 세계에 있는 존재들의 통제를 넘어서서 접촉을 할 수 없다고 계속 주장했다. 그것의 진정한 이름은 사라져버린 구시대적 “강령술(necromancy)”이며, 동양에서는 “부타 숭배(bhuta worship)”라고 불렀다.



이것이 정확한 이름이다. 5장에서 설명했듯이, 접촉해서 말하고 시범을 보이는 존재는 죽은 사람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최근 살았던 개성의 기억을 상당히 가지고 있는 아스트랄 체이지만 윤회하는 자아(Ego)의 힘들과 지혜 그리고 시야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들에서 어떤 철학이나 도움이 되는 혹은 깨달음을 주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혼의 과학 혹은 신지학을 심령주의라고 부를 가치가 있다.


“심령주의, 과거와 현재”라는 글에서 졋지 씨는 말한다. 고대 시대에는 다양한 목적을 위해서 활용된 순수한 영매들이 있었다. 그들은 결코 돈을 받지도 않았으며 최고의 윤리적인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의 오라클이나 다른 곳에서 있었던 베스탈(vestals)들은 모두 영매들이었고 그들을 통해서 질문에 대한 대답이나 해결책들이 왔다. 동시에 기록을 보면 다른 심령주의, 즉 강신술에 대해서 경계를 했거나 금지했다. 성경에 보면 어떤 곳에서 모세가 이것을 행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되어 있다.1



지금까지 있었던 많은 현상들은 영매들이 트랜스 상태에 있을 때 이루어졌다. 그러나 강령회가 끌리는 주된 것은 죽은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형태의 물질화와 목소리나 글쓰기를 재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스트랄 빛 속에 남아 있는 그림들이나 죽은 사람의 아스트랄체를 사용함으로써 가능하다.


졋지 씨의 글인 “심령주의(Spiritualism)”에 따르면, 어떤 사람의 이미지가 반영되는 형태는 영매의 아스트랄체나 근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서 빨아들인 아스트랄 물질로 만들어진다. 영매는 일정 시간이 되면 객관적인 상태로 변하지만 오랫동안 있을 수 없는 조밀한 형태를 주관적인 상태에서 만들기 위해서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느슨한 물질 원자들에 아스트랄 입자들을 첨가되는 자연스러운 화학 실험실을 제공해 준다. 그것은 곧 사라져 버릴 것이다. 우선 자기적, 아스트랄적 입자들의 토대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같이 있는 사람들의 신체들로부터 나온 물질 입자들을 첨가함으로써 압축된다. 그것은 당연히 떠난 사람의 천상의 형태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지구에서 떠돌고 있는 매우 나쁘고 타락한 성질을 가진 사람으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옛날의 갈망을 계속해서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의 큰 힘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완전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 위의 글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이 복잡한 모든 재생의 법칙들과 세부사항들을 알았다면, 아마도 설명하는데 수 십 권의 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강령회에 나타나서 말하고 글을 쓴 것은 죽은 자의 진정한 영이 아니라 떠난 사람의 아스트랄 잔여물들과 아스트랄 물질들로 구성된 복사본이라는 지식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스승들께서 경고하시길, 수동적인 상태를 필요로 하고 빠져 나간 아스트랄 에너지의 유출을 겪고 철저한 현혹 때문에, 강령회에 참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해로운 일이라고 경고하였다.



메즈머리즘과 최면은 같은 것인가


영어사전에 의하면, 앤톤 메즈머(Anton Mesmer)는 “동물적 자성(animal magnetism)이라고 불렀으며 그 이후 메즈머리즘이라고 불려진 인간 안에 있는 자기적 유액을 재발견하고 실용적으로 적용한 유명한 물리학자였다.” 그는 룩소르(Luxor) 형제단에 입문한 구성원이었으며 1775년에 유명해졌다. 또한 그는 서구 사회가 물질주의와 종교적인 도그마를 깨고 나올 수 잇도록 돕기 위해서 지난 세기에 보내진 선구자라고 제시되고 있다. 그의 이름 하에 나간 고대의 과학은 아스트랄체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제 5장에 언급된 것을 참고하거나 거기에서 언급한 문헌들을 참고할 것을 제안한다.

메즈머리즘과 최면은 어떤 면에서는 통상 육체에서 두뇌로 가는 자극과 육체적인 감각들을 중화시키기도 한다. “메즈머리즘(Mesmerism)”이라는 글에서 말하길, “매혹시키는 이런 유액이 메즈머리즘을 시술하는 사람으로부터 흘러 나와서 시술을 받는 사람의 전체 신체 위로 꾸준하게 퍼져나가서 신체의 모든 부분에 있는 세포들의 극성을 변화시키고 그러다 보니 내면의 인간과 외면의 인간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되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아스트랄체의 감각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 등등을 자유롭게 두뇌에 전달하게 된다. 이런 감각들이 훨씬 더 강력한 감각들이고 아스트랄 영역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전혀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올바르게만 해석한다면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문제가 있다.

특히 최면술과 관련해서. 같은 글에서 졎지 씨가 말하길;


이 내면의 감각들은 위치나 장애물에 관계없이 거리에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어떤 조건 하에서는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 또한 그 감각들이 보는 모든 것의 성질을 항상 이해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종종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정보를 주었을 때, 시술자가 보기를 원하는 것을 보았다고 전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스트랄 감각들은 이전 생의 유산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경험을 넘어설 수 없으며 그래서 그들의 인식들이 그것에 의해서 제한을 받는 것이다.



요즘 들어 받아들여지고 유명해진 최면은 메즈머리즘을 새롭게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것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들을 최면 상태에 들어가도록 허락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위험들을 끌어 들인다는 데서 큰 차이가 있다. “최면과 신지학”이라는 글에서 졋지 씨가 말하길;


그러나 진정으로 도덕적인 죄는 이것이다. 최면의 힘과 위력에 대해서 더 알려짐에 따라서, 어떤 영향력이든 최면에서 진행되는 과정은 신체와 두뇌 세포들을 주변에서 중심으로 수축시키는 것이라고 알게 된다. 이 과정은 사실 죽음의 현상이다. 그리고 메즈머리즘 영향과는 정반대의 효과이다. 이 점은 의학계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인간에 의한 메즈머리즘은 내면에서 시작해서 외면으로 진행되어 최면과 정반대인 생명 현상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메즈머리즘과 최면이 사용되었던 고대 시대에는 시술자는 순수하고 고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항상 강조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가정 때문에 그렇다; 즉 시술자의 육체적, 심령적, 정신적 혹은 윤리적인 어떤 것이 대상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서도 두 가지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최면을 받게 되면, 혼과 아스트랄 인간 사이에 단절이 일어나고 그 시간 동안 그는 자유의지가 없는 것이고, 시술자가 암시하는 어떤 것에도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신지학에서는 이런 것에서 암시에 민감해지고 어떤 경우에는 최면가의 행동이 없이도 암시를 통해서 최면 상태가 자동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비록 최면을 받는 사람이 최면에서 깨어난다 해도 시술자의 영향력이 죽을 때까지 남아 있다고 말한다.



H.P.B.가 [아이시스 언베일드(Isis Unveiled)]에서 언급한 현상에 대한 9가지 금언을 인용하면서

 이 번 장의 주제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1. 기적이란 없다. 일어나는 모든 것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항상 활동하는 법칙의 결과이다.



2. 대자연은 삼중구조이다

.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자연이 있다. 이것과 똑같은 모형의 보이지 않으며 내재하고 에너지를 제공하는 자연이 있다. 그리고 생명 활력의 원리. 위의 두 가지보다 영은 영원하며 파괴될 수 없고 모든 힘들의 근원이다. 하위의 두 가지는 항상 변한다. 그러나 상위 세 번째는 그렇지 않다.

3. 인간도 삼중구조이다.

객관적인 물질적 육체가 있다. 활기를 주는 아스트랄체(진정한 인간)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은 불멸의 주권자인 영에 의해서 품어지고 환하게 밝혀진다. 진정한 인간이 영과 합일하는 데 성공할 때 영원한 존재가 된다.


4. 과학으로써 마법은 이런 원리들과 육체 속에 있는 개인이 영의 전지전능함과

자연의 힘들에 대한 통제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지식이다.


5. 비밀의 지식을 잘못 적용하면 흑마술이다. 혜택을 주는데 사용하면 진정한 마법 혹은 지혜이다.

6. 영매는 초인 상태의 반대이다.

영매는 이상한 영향력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도구이다.

초인은 자신과 하위의 잠재성들을 능동적으로 조절한다.



7. 이제까지 있었고, 현재 있으며 앞으로도 있게 될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우주의 감광판인 아스트랄빛에 기록되어

입문한 초인은 자신의 영의 시야로 알려진 모든 것,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8. 인종들은 색깔이나 신장 혹은 다른 외적인 것에서 다르듯이 영적인 적성에서도 차이가 있다.

어떤 민족들 사이에서는 예지자가 자연적으로 우세하고, 또 어떤 민족들 사이에서는 영매가 우세한다.


9. 마법 기술의 한 면은

내적인 인간(아스트랄 인간)을 외적인 인간(육체 인간)으로부터

자발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철수시키는 것이다.


어떤 영매들의 경우에는 철수가 일어난다. 그

러나 그것은 무의식적이고 비자발적이다. 그러나 초인의 경우 아스트랄 형체가 없는 경우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육체적 감각들이 곤두서 있고 개개인은 마치 순간적인 묵상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들을 진정으로 안전하게 개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먼저 영적인 힘들을 개발하고

그리고 심령적 육체적인 힘들을 자연스럽게 개발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신지학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적인 세계에서 작용하는 과학적인 이유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이전 장에서 많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졋시 씨가 말한 것들을 몇 가지 인용함으로써 본 주제를 마치고자 한다.

진정한 신비주의와 오컬티즘의 첫 단계는 보편적인 형제애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이것 없이는 마법 수행에서 최고의 진보가 재로 변하고 만다. [나를 도와준 편지들 [Letters That Have Helped Me, p. 105.]

앎의 힘은 단순히 책을 공부함으로써 오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철학에서도 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말과 행동과 생각 속에서

이타주의를 실제로 실천함으로써 온다.

왜냐하면 그런 실천은 혼의 외피들을 정화시켜 주고 그 빛이

두뇌와 정신 속으로 내려 비추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오컬티즘에 대한 대화]

엄격하게만 수행한다면 우리들의 국가에 대한 의무들도 하위 다섯 번째 원리들을 정화하고 더 나은 부분을 개발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고 보편적인 인내와 자비를 깨닫는 것도 상위 다섯 번째 원리를 정화시키고 그것을 신성하게 만들어서,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무지의 굴레에서 우리가 점차로 벗어나도록 만들어 준다. [고귀한 삶을 사는 것]

그러면 결국 만병통치약, 최고의 부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의무(DUTY), 무자아(Selflessness)이다. 의무를 끈기 있게 따르는 것이 최고의 요가이고,

어떤 것 혹은 자세나 만트람들보다도 더 나은 것이다.

의무만 다한다면 그대에게 목표를 가져다 줄 것이다.


[나를 도와준 편지들 [Letters That Have Helped Me, p. 68.]

우리가 다른 여행자들을 돕기 위해서 멈출 때 가장 빨리 진보한다.

우리가 최대한 희생할 때 우리는 최대한 받는다. [영적인 선물과 성취(Spiritual Gifts and their Attainment)]




각주 1

불과 부얶의 여신 베스타(Vesta) 여신을 시중든 신녀(神女) (영원한 정결을 맹세하고 여신의 제단의 성화를지켰던 6명의 처녀의 한 사람).

  1. 불과 부얶의 여신 베스타(Vesta) 여신을 시중든 신녀(神女) (영원한 정결을 맹세하고 여신의 제단의 성화를지켰던 6명의 처녀의 한 사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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