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베일은 육체적인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빛과 같이 육체적인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왕이 이 세상을 통제하고, 하나님의 빛을 가져오기 위해 이곳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들이 자신들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환상입니다.

먼저 이 세상의 왕은 자의식을 지닌 이러한 존재들이 자신들의 참된 정체성을 망각하게 하고, 육체와 동일시하게 하는데 가까스로 성공했습니다. 이 세상의 왕은 이제 육체가 지니고 있는 제약을 활용하여, 사람들을 이러한 환상 속에 계속 가두어두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왕은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의 불완전함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피해 갈 수 없으며, 영원한 것이라고 믿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빛을 비추지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완벽한 비전에 따라, 현재의 상황들을 대체하고, 그러한 상황들을 끌어올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왕과 세속적인 자아가 만들어놓은 음모입니다. 어떻게 해야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있으며, 지구 인구의 99%를 가두어놓고 있는 이러한 거대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그러한 환상으로부터 해방될 수가 있을까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으며, 그것은 여러분의 하위 4개 몸체들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께서 이 행성에 대해 간직하고 계신 고차원적인 비전, 즉 우리가 무결한 개념이라고 부르고 있는 비전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무결한 개념이란 무결한 수태(受胎:conception)의 참된 의미입니다.


나는 정통 기독교에서 원죄가 없는 잉태(누가복음 1:35)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예수를 낳았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자연스럽지 않은, 혹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수태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의 의미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 아이가 태어날 거라는 극적인 변화를 받아들인 후, 무결한 개념, 즉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명에 대해 무결한 비전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로서, 나는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내적인 비전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한 예수가 지구에 온 이유와 그 생에 완수하도록 되어 있었던 사명에 대해서도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무결한 개념을 제대로 간직하는 일은 내 삶의 기간 내내, 내 의무였고, 시험대였으며, 때로는 투쟁이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는 아주 다루기 힘들었던 아이였을 때 그리고 10대였을 때가 있었으며, 심지어 어른이 다 되어서도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가 무엇을 했든,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났건 상관없이, 예수가 지닌 그리스도의 신성을 최대로 실현하고,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에 대해, 내가 무결한 비전에 충실하는 것이 나의 도전과제였던 것입니다


외적인 환경 속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유대교의 일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것이 실제로 최고의 가능성이었습니다. 분명히 말해,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외형상으로 보면, 일어날 수 있었던 최하의 가능성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보다 높은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사명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식을 충분히 성취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성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셨으므로,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길의 핵심은 여러분이 자신의 빛을 비추고, 하나님의 사랑을 주기에 앞서, 지구에 이상적인 상황이 오기를 앉아서,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여러분이 직면하게 되는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그러한 상황들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빛과 사랑이 그러한 상황들을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외적인 상황과는 관계없이,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아무리 불완전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보다 높은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사명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처해 있는 외적인 환경들이 어떠한 인간적인 기준에 부응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사명 역시도 성공적인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열쇠는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제약들을 초월하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상황들을 뛰어넘어, 그 너머를 보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었으며, 나의 도전과제였으며, 나는 언제나 예수가 승리한다고, 즉 부활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예수가 재판을 받고 있을 때에도, 군중으로 가득한 거리를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때에도, 심지어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조차도, 외형적으로 극심한 긴장과 불완전한 상황들을 뛰어넘어, 그 너머를 보는 것이 나의 도전과제였던 것입니다. 나는 무결한 개념이라는 내 비전에 충실해야만 했으며, 인간적인 모든 제약들을 초월하여, 예수가 부활하여 영원한 자유를 얻을 거라는 확고한 비전을 간직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삶 속에서 여러분이 직면해 있는 도전과제이며, 또한 행성 차원에서 이 시대에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과제이기도 합니다. 지구에서의 삶에 있어, 핵심적인 도전과제는 어떠한 상황에 속아서, 하나님의 빛과 사랑이 여러분의 하위 4개 몸체들을 통해 흐르는 것을 차단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최고의 비전에 충실해야 하며, 불완전한 것들이 실재하는 것이며, 영원하거나, 혹은 정복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든 외적인 상황들 뒤에는 순수한 물질의 빛이 존재하며, 물질의 빛은 자의식적인 마음을 통해 그 빛 위에 투사된 비전은 어떤 비전이든 표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질의 빛은 현재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불완전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완벽함도 쉽게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인류의 의식과 자연재해 및 인간적인 분쟁의 형태로 이 물질 행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간에 연결고리에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에 자발적으로 눈 뜨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우주의 거울이 인류가 내보낸 것을 갖가지 재난과 격변의 형태로 인류에게 되돌려주는 것을 이 행성에서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저지른 행위들에 따른 결과를 언젠가는 보게 됨으로써, 깨어나게 될 거라는 희망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숨겨져 있는 원인이 있지 않을까, 혹은 이러한 외적인 재난들을 피하기 위해, 자기 자신들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고 곰곰이 숙고해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시련의 학교를 체험하지 않고, 영적인 안내를 통해, 사람들이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대규모적인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실제로 많은 재난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 현실적인 냉정한 평가입니다. 각성이 임계 수치에 이르지 않는다면, 많은 재난이 일어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미리 밝혀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행성에서 영적으로 가장 많이 각성해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인류와 지구 행성을 위해, 무결한 개념을 간직해야 하는 사명을 단호하게 고수하라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외적인 상황들을 뛰어넘어,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며, 외적인 상황들이 아무리 심각해 보인다 하더라도, 지구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데 지속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무결한 개념을 지니는 것에 충실하기를 바랍니다.


아이를 분만하고 있는 여성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제정신이 아니게 됨으로써, 예쁜 새아기를 분만하기 위해, 이 여성이 일시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됩니다. 지구 어머니를 바라보고, 지구 어머니가 여러 가지의 고통과 재난을 체험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아픔과 재난들이 더 좋은 새로운 시대, 즉 황금시대를 열고 있는 분만의 고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재난들을 원하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의 발밑에서 지구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지 않고는, 인류가 깨어나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것입니다. 


무결한 개념을 지니는데 충실하기 위해, 여러분은 반드시 외형적으로 불완전하게 보이는 것들 그 너머를 보려고 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방에서 어둠을 제거할 수 없다는 비유를 통해, 많은 영성인들은 영감을 받아 왔습니다. 여러분이 아주 깜깜한 방에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은 어둠을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버릴 수가 없습니다. 어둠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는 것은 제거할 수 없으며, 훼손할 수도 없습니다. 이원성적인 의식, 즉 반-그리스도의 의식도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진실로, 이원성적인 의식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단지 빛의 부재(不在), 즉 그리스도의 진리가 부재일 따름입니다.


전 물질 우주 속에서처럼, 지구 행성도 현재는 빛이 부재한 상태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상황으로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의 빛을 비추게 됨에 따라, 빠르게 극복될 것입니다. 지구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것은 이 세상의 왕이 이러한 빛의 부재가 영원한 것이며,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는 거짓말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도록 해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으며, 여기에 있고 싶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돌보지도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의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틀어서, 악에 맞서 싸우는데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지구에서 악을 제거하기 위해, 악을 말살해야 하며, 악이 실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믿음 속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경우, 이들은 어떠한 그룹의 사람들을 악의 원인이라 여기고 있으며, 따라서 악의 원인이라고 지목을 당하게 되는 사람들은 그러한 인종, 국가 혹은 종교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일 때에만, 행성에서 악을 제거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사악한 거짓말에 희생양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선(善)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악을 행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정당화된다는 거짓말이며, 진실로 사악한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말했던 것처럼, 실체가 없는 것은 제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 악을 저지른다면, 단지 어둠, 즉 부적격한 에너지만을 추가로 보탤 뿐이며, 따라서 악의 세력들을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미묘한 차이를 전해주고자 합니다. 본질적으로, 어둠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이원성적인 의식도 본질적으로 실체가 없는 것이며, 이러한 의식은 오직 자의식을 지닌 존재들이 자신들의 마음속에, 즉 자아라는 구체 속에 머물도록 허용할 때에만, 계속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지구 행성에는 어둠에 힘을 보태주는 특이한 현상이 존재하며,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인류는 여러 시대에 걸쳐 부적격한 에너지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적격한 에너지는 일시적으로 실체를 가지게 됨으로써, 반-그리스도의 의식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앞에서 부적격한 심령 에너지라고 불렀습니다. 반-그리스도 의식을 뜻하는 어둠은 실체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의식을 지닌 존재가 이원성적인 의식 속에 갇히게 되면, 이들은 부적격한 심령 에너지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적격한 에너지는 실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제거할 수가 있으며, 따라서 어둠의 세력들로부터 힘을 빼앗을 수가 있습니다. 어둠을 제거하거나, 파괴함으로써, 부적격한 에너지를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에너지가 물질계로 유입된 이상, 그러한 에너지를 사라지게 할 수가 없으며,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부적격한 에너지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러한 에너지를 다시 순수한 상태로 변형시키는 것뿐이며, 이렇게 하기 위해, 높은 주파수의 빛을 불어넣어 부적격한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보다 완벽한 형태를 지닐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순수한 비전을 부적격한 에너지 위에 포개놓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분쟁에 휘말려,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단지 더 많은 에너지에 권능을 잘못 부여함으로써, 어둠의 세력들이 사용할 수 있는 부적격한 에너지의 전체량을 증가시킬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칙에 반하는, 부정적인 감정 혹은 행위들을 통해 어둠과 싸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단지 어둠만을 보탤 뿐이며, 따라서 어둠 속에 더 단단히 갇히게 됨으로써, 행성에 존재하는 어둠의 세력들이 힘을 키울 수 있게 해줄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부적격한 에너지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영원히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적격한 에너지로 만들어진 모든 구조물들은 수축하는 어머니의 힘에 의해 언젠가는 자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적격한 에너지로부터 만들어진 불완전한 상황들 역시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지구에서 불완전한 상황들을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불완전한 상황들을 없애기 위해, 그러한 상황들을 집어 들어, 블랙홀 속으로 던져 넣을 수가 결코 없는 것입니다. 어둠을 제거할 수 있는 진정한 열쇠는 어둠 속으로 빛을 불어넣는 것이며, 어둠이 현재의 제약적인 상태를 초월하여, 더 큰 것이 될 수 있도록 사랑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 존재하는 불완전한 것들을 바라보면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화가 나서, 이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혹은 어둠과 싸우기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두려움 혹은 분노가 동기(動機)가 된다면,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것들은 단지 더 많은 에너지에 권능을 잘못 부여하게 될 뿐이며, 따라서 어둠의 세력을 키우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 분노, 증오, 자만, 혹은 기타 부정적인 감정들에 기초한 의식 상태에 있는 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존재를 통해 흐르는 것을 어떠한 상황들이 단절하도록 허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노하고 있는 사람을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사실을 명백하게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건가요? 물론, 아닙니다!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누군가 잘못을 했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므로, 그러한 상황에 사랑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들에게 잘못된 행위를 저지른다면, 이들은 하나님의 빛이 자신들을 통해 흐르는 것을 마땅히 단절해야 하며,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으로 반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적을 사랑하고, 다른 쪽 뺨마저 내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가르침들 속에서, 단순한 하나의 메시지만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셨던 핵심적인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무슨 짓을 한다 해도, 그리고 삶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던지다 하더라도, 항상 사랑으로 대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신성한 사랑으로 반응해야 하며, 신성한 사랑은 어떤 것이든, 불완전한 것들은 궁극적으로 실재하거나, 영원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의 존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게 하고 있는 것이며, 불완전한 상황들 속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불어넣음으로써, 그러한 상황들이 스스로를 초월하여 더 큰 것이 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