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이야기 윤회 이야기] 진시황 탄생의 비밀, 용의 아들


글: 서양인 대법제자 


[정견망] 
1. 역사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전기(傳奇)적인 색채가 아주 농후하고 또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자 또 줄곧 논쟁이 많은 사람이다.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기원전 259년~210년)의 성은 영(嬴), 이름은 정 (政), 지금의 하북에 속하는 한단(邯鄲)에서 태어났다. 후세에 속칭 영정(嬴政) 혹은 진왕 정(秦王政)이라고 부른다. 13세에 즉위했으며 스스로 시황제라고 칭했다. 39세에 6국을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웠다. 50세에 시찰을 나갔다가 붕어했다.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전제(專制)군주 제도를 채용했고 중앙집권 통일국가의 창립자이다. 또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진시황은 재위 기간에 각종 대형 공사를 진행했는데 만리장성을 축조하고 아방궁, 여산릉(驪山陵) 등을 만들었다. 일평생 천하를 병탄하고 황제를 칭하고 분봉제를 폐지했으며 군현 설치, 월나라 정벌, 흉노 몰아내기, 장성축조, 도랑 소통, 병기를 녹여 화폐를 주조, 부호 축출, 수레바퀴 통일, 문서통일, 도량형, 저울, 법도를 통일해 나라를 다스려 중국의 대통일, 정치제도 창건, 중국 민족의 전승에 지울 수 없는 작용을 일으켜 후세 중국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진시황이 사망한 해는 바로 기원전 211년(진시황 36년)으로 1년간 연속으로 세 가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기(史記)’의 기록에 따르면 인심을 현혹하는 천문 현상이 일어났다. 옛사람은 화성을 ‘형혹(熒惑)’ 또는 ‘심수(心宿)’라 불렀는데 현대 천문학에서 말하는 전갈자리이며 이것의 출현은 크게 불길할 징조로서 천자가 자리를 잃거나 황제가 붕어한다는 뜻이다. 


같은 해 어느 운석이 동군[東郡-지금의 하남성 박양(濮陽)시]에 떨어졌는데 그 돌에 “시황제가 죽고 땅이 나뉜다”고 새겨져 있었다. 


같은 해 가을, 어느 동쪽에서 온 사신이 밤에 화음(華陰)에서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손에 벽옥을 지니고 사자를 가로막았다. 사자에게 이 벽옥을 호지군(滈池君)에게 전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금년에 조룡(祖龍)이 죽는다”라고 말했다. 사자가 그 까닭을 묻자 그 사람은 벽옥을 남겨놓고 즉시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다. 사자는 이 벽옥만 받들고 시황제에게 가서 자기가 만난 이상한 일을 말했다. 


그 후 진시황이 사람들에게 이 벽옥을 살펴보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시황제 28년 바깥에 순시하러 나갔다 강물에 빠뜨린 것이었다. 진시황은 기원전 210년(진시황 37년) 제5차 순시를 나갔는데 역시 그의 마지막 순시가 됐다. 


2. 입정(入定) 중에 본 것



대법수련 하는 입정 중에 사부님께서는 나의 오래된 기억을 열어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정법을 위해 인류를 창조하셨다. 인류는 처음에 병사가 천하를 정복하고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정상이었다. 이 정법(正法)은 자연히 용(龍)과 관계 있다. 역사상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용은 자기의 몸에서 용자(龍子)를 취해 조(趙)씨의 뱃속에 넣어둔다. 조씨는 진나라 장양왕(莊襄王)과 동침하기 전에 아이를 가졌으므로 왕은 노해서 그녀를 죽이려 한다. 용은 장양왕을 타이른다. 이 아들의 내력을 말해주고 후일 존귀한 천자가 될 것인데 이는 큰 조화와 운명으로 나라와 국민과 자손을 후대에 큰 공헌을 할 것이라며 그를 잘 돌보라고 한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자기가 낳은 아이로 친다. 나중에 과연 왕위가 그에게 전해진다. 그가 바로 인류역사상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이다. 


진시황의 출생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사기 진시황 본기’에 따르면 진왕 정은 장양왕 자초(子楚)와 조희(趙姬)의 소생이다. 하지만 ‘사기 여불위 열전’에 따르면 여불위가 조희를 자초에게 바칠 때 이미 그녀가 아이를 가졌음을 알았으니 영정은 아마 여불위의 사생아일 것이라는 것이다. 동한의 사학자 반고(班固) 역시 이 설을 인용해 자신이 지은 ‘한서(漢書)’에서 영정은 여불위의 사생아라고 했다. 진시황이 죽은 지 2000여년이 되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진시황은 여불위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다. 

대법수련의 입정 중에 알게 됐는데 진시황 영정은 용이 사람에게서 얻은 첫 번째 아들이다. 진시황이 세상을 떠나는 그 해에 어느 신인이 진시황을 칭하기를 ‘조룡(祖龍 용의 조상이란 뜻)’이라고 한 것이 그 원인이다. 


출처: 파룬따파 정견망 www.zhengjia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