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이야기 윤회 이야기] 내 삶의 잊을 수 없는 수행의 시간 



잊을 수 없는 시간 


작자:대법제자 


[정견망] 인생은 짧다. 눈 깜짝할 사이에 파룬궁을 연마한지 15년이 되었다. 내가 걸어온 인생의 길을 회상하면 감개한 나머지 내가 아직 만나 뵙지 못한 사부님께 더욱 감사드린다. 사부님을 생각하기만 하면 나는 눈물을 금할 수 없다. 사부님은 병투성이의 온몸을 청리해주시고 고통을 없애주셨으며 대법으로 인해 나는 반본귀진의 길을 걷고 어떻게 사람이 되는가 하는 도리를 알게 되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오곡을 먹는데 병이 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병원과 약을 구하며 각종 신체 단련방법, 기공연마 등을 채용한다. 90년대 많은 공파가 유행했던 시대로 가장 유행하던 것 중에 중공(中功)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있는 직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웠고 당시의 뜨거운 화제였다. 그들은 매일 아침 단체 연공하는데 주로 마보를 연마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매우 애를 썼으며 특히 주변 동료가 참가할 때마다 돈을 내는데 신체가 호전되는 것이 보이지 않았으며 여전히 약을 먹었다. 비록 그들이 내게도 배우라고 권했지만 나는 고생하는 것이 싫었고 또 그들에게 연공의 효과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미루었다. 


법을 얻다


1997년 3월 어느 날 나는 직장 근처에서 옷을 맞췄다. 당시 일이 별로 없어서 많은 사람들은 근무시간에 자기 개인적인 일을 했다. 내 직장 동료 많은 사람들도 이 양장점에서 옷을 맞췄다. 그때 그녀는 일하는 한편 녹음기를 통해 설법을 듣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파룬궁의 좋은 점을 말해주었으나 나는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다고 했으나, 그녀는 내게 책을 보라고 권했다. 나는 책이나 신문 등을 보지 않으며 보기만 하면 구역질이 나고 어지럽다고 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하며 한번 보라고 다시 권했다. 자꾸 거절하는 것이 미안해, 떠날 때 책 한 세트를 가지고 왔는데 그때는 부탁이니 들어주고 며칠 있다가 옷 찾으러 갈 때 돌려주려고 했다. 


어느 날 오후 아무 할 일어 없어 그저 책을 꺼내 펴보았는데 <전법륜>이 매우 두꺼워서 한쪽에 놓고 또 <법륜대법의해>를 펴보니 그 속에는 수련생이 제기한 많은 문답이 들어있었다. 몇 개를 보니 아주 재미있고 내 마음에 맞는 것 같아, 호기심에 오후 내내 계속 보았다. 그 당시 책을 볼 때 구역질이 나지 않았다. 거의 퇴근시간까지 봤는데 아직도 미진한데가 있었다. 많은 문제의 질문과 해답이 매우 신기했으며 나도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가장 주요한 것은 오후 내내 책을 보았는데도 심신이 매우 편안하고 마치 비온 후에 논밭이 매우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당시 내심 희열을 느껴 <전법륜>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저녁에 좀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이익을 얻다


저녁 식사 후 나는 얼른 책을 보았다. “내 생각에, 내가 공을 전하고 설법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장래에 당신은 알게 될 텐데, 당신은 이 시간이 매우 보람찼다고 여길 것이다.” 이 부분을 보았을 때 온몸이 진동을 했으며 지금까지도 그 느낌은 아직 또렷하다. 나중에 ‘다섯 가지 공법을 한꺼번에 배운다.’는 것을 보고 마땅히 연공동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떻게 연마하는지 몰랐는데 책을 이틀간 본 후 신체에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 


즉 오랫동안 아팠던 목뼈가 나았고 오래 앉아 있으면 요통이 있던 것도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기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팔짝뛰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옷이 다 되어 찾아가지고 갈 때 그녀에게 내가 책을 사고 파룬궁을 연마하겠으니 연공테이프를 구해달라고 했다. 당시 비디오 기계가 매우 귀할 때이므로 비디오테이프 구하기도 힘들었다. 어렵사리 테이프를 구하여 친구에게 복사를 부탁했고 이후 며칠간 동작을 따라 연마했다. 천목이 열려 일부 장면을 보았고 자전거를 타도 매우 가벼웠다. 길을 걸을 때 마치 밑에서 무슨 힘이 받쳐주는 듯해서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듯 했으며 몸이 날아오르려 했다. 그 시간은 정말 행복이 극에 달했다. 늘 약을 먹어도 좋지 않았는데 연공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증상이 다 사라졌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나는 좀 일찍 파룬궁을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파룬궁을 배우기 전엔 늘 기관지와 목뼈 때문에 시달렸다. 감기에 걸리기만 하면 기관지 염, 기침, 가래, 숨이 차고, 비강이 막혀 숨을 쉬려면 입을 벌려야 했고 기침을 하면 울려서 머리가 아플 정도이며 양약, 한약이 끊이지 않았다. 목뼈가 아파 머리가 붓고 목덜미가 뻐근했으며 압박이 심할 때 두통과 구역질이 났다. 병원에 가서 보면 의사는 많은 약을 처방했다. 근처 무당을 찾아가보면 늘 향을 올리는 돈을 요구했으며 그래도 낫지 않았다. 다만 심리적인 위안으로 집에다 신선의 위패를 모시고 매일 경건하게 절을 하며 건강을 기도했다. 


파룬궁을 수련하기로 결심한 후 이전에 내가 모셨던 ‘신선’들의 위패를 버렸다. 무좀을 치료하려고 하던 고약과 약물, 요통을 치료하려던 약과 소염제, 지통제의 일종인 한약, 양약을 다 통째로 내버렸다. 나는 얼른 이 좋은 공법을 친척들에게 소개하려 했으며 그들에게 책과 테이프 등을 구해주었다. 누구든지 배울 생각만하면 가능한 한 그들에게 책을 사주었다. 이 공법이 이렇게 진귀한 것을 알기에 비록 사부님을 뵌 적이 없지만 직감적으로 사부님은 신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신만이 이렇게 큰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렇게 좋은 공법을 전하는데도 돈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변화


당시 직장에서는 공용물품을 집으로 가져가는 것을 예삿일로 여겼다. 각자 편리한 조건을 이용했다. 크게는 돈도 가져가고 작게는 생활용품을 가져갔다. 나도 주변의 동료와 마찬가지로 물품 과에서 약간씩 가져와 가정용으로 가져가고 작업 할 때는 옛날 물건을 그대로 썼다. 법공부할 때 책에 이렇게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편직물공장의 수건을 늘 자기 집으로 하나씩 가져갔는데 모든 직원들이 그랬다. 공을 배운 다음에는 그는 가져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집에 가져갔던 것도 도로 가져왔다.” (전법륜) 


파룬궁을 연마하면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사부님의 제자에게 우주의 진선인 특성에 따라 사람이 되며 각종 나쁜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요구하셨다. 초기에 나도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망신당할 일도 아니고 이런 편리한 조건이 있으니 행운이라고 느꼈다. 법공부 이후 다시는 직장의 어떤 것도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이후 물건을 바꿀 때 바꾸지 않았으며 오래된 물건을 사용할 수 없으면 집에 가져갔던 것을 다시 가져와서 사용했다. 동료들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이해하지 못했으나 처음에는 의혹하다가 점점 존경하는 태도로 바뀌었으며 또 내가 물건을 보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칭찬했다. 


우리가 만나는 거래처 사람은 늘 일부 선물을 주곤 했는데 좀 잘 봐달라는 뜻이었다. 파룬궁을 배운 후 나는 더 이상 그 물건을 받지 않았다. 처음에 자기가 내게 무슨 잘못한 일이 있지 않은가 생각했으나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니 파룬궁에서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지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말해주었다. 동료들도 내 대신 설명해주었으며 파룬궁 사부는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만나보지 못한 제자도 이렇게 말을 잘 듣는다고. 법 공부를 함에 따라 점점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동료 간에 서로 잘 났니 못 났니 누가 무엇을 많이 했니 많이 가져갔느니 등을 따지지 않았고 속세의 일에 거의 말려드는 일이 없었으며 각종 사람관계에 고민하지 않아 세속을 초탈한 가벼운 느낌이었으며 정신이 편안하여 동료들이 보고 부러워했다. 내가 책을 보고 나면 주위 동료들도 다투어 책을 보았으며 책의 어떤 힘이 사람을 이렇게 바꿀 수 있는지 찾아보려고 했다. 애석하게도 이 사람들이 책을 얼마 보지 못했을 때, 이렇게 좋은 공법이 사악한 당의 박해를 받았다. 만약 이 진압이 없었더라면 주위 사람들이 파룬궁을 많이 연마했을 것이다. 


친지들의 견증


나의 가족들은 많이 소개할 필요 없이 내 자신의 변화로부터 파룬궁은 일반적인 기공이 아님을 믿게 되어 분분히 배우려고 했으며 짧은 시간에 이익을 많이 받았다. 우리 언니는 담배에 중독된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설법 테이프를 두개 들은 후 다시 담배를 피우자 입이 쓰고 구역질과 기침이 나 바로 담배를 끊었다. 부친은 1947년에 군대에 들어간 노 간부인데 젊었을 때 허리에 상처를 입어 부대 병원에서 허리보호대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기억할 때부터 늘 허리에 차고 다녔다. 만년에는 고혈압, 폐부종 등이 있었다. 파룬궁을 배운 후 허리띠를 벗어버렸고 신체가 건강해졌으며 젊은 사람처럼 자전거를 타고 외출하여 물건을 사러 다닌다. 모친은 전족을 한 사람인데 어지러워 활동을 잘 못했는데 연공 후 변화가 컸다. 자기 발이 날아갈 듯하며 온몸이 가볍고 멀리 걸어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 지금 87세이다. 또 머리가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해보니 의사들도 신체가 좋다고 매우 감탄하며 이웃, 친척들도 칭찬한다. 내가 먼 친척들에게 녹음테이프를 보냈는데 그들도 매우 좋아했다. 정말 “들은 자는 찾고 얻는 자는 기뻐한다”<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 였다. 


염원


1999년 7.20 그 사악한 박해가 시작됐다. 강마두(강택민)를 우두머리로 하는 중공은 일억이 넘는 민중을 대립으로 밀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착한 수련인을 박해하고 우리에게 신체 건강을 주고 마음을 선한 곳으로 향하여 좋은 사람이 되게 가르친 사부님을 모독했다. 그때 나의 마음은 정말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었고 TV, 신문 등에서 하늘과 땅을 뒤덮는 비방을 보고 괴로움이 극에 달했다. 당시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각지의 정부부처에 가서 청원했으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체포되었다.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저 천안문 광장에 가서 ‘파룬따파하오’를 외쳐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의 양심


2000년 11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 한명과 함께 북경으로 갔다. 당시 나는 12살 된 딸이 있었고 남편은 먼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연휴를 선택하였는데 토요일에 가서 일요일에 돌아오기로 했다. 북경을 들어가는 기차는 검사가 매우 엄격했다. 우리는 중도에 가로 막혔으며 우리 지역에 통지되었다. 밤 9시에 우리 지역에서 차가 와서 우리를 데리고 갔으며 내가 직장에 도착 했을 때는 새벽 네 시였다. 보위과장과 당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매우 관심을 보였으며 “생각을 넓게 가져라, 지금은 형세가 좋지 않다, 약자가 강자를 당해낼 수 없다, 집에 숨어서 공부하고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등의 말을 했다. 보위과장은 휴가로 집에서 석탄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내게 일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급했다. 모두들 공산당이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사람은 괴롭히면 안 되지 라고 생각했다. 사장이 얼른 전화를 하여 그에게 빨리 직장으로 돌아오라고 했고 사람을 시켜 우리를 찾아오라고 했다. 내가 돌아오면 바로 그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날이 밝자 사장은 보위 과장에게 나를 데리고 우리지역 공안국에 가라고 했다. 직장의 이름으로 나를 집으로 돌려보낼 것을 보증했다. 일요일이었기에 당시 국보대대장이 자리에 없어 다음날 출근하기를 기다려 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파출소에 잡혀 있었으며 직장에서 여 동료를 보내어 나를 돌보게 했고 다음날 나는 5000위안을 내고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알았는데 직장 상사는 집으로 사람을 보내 나의 딸을 돌보았다. 딸에게 엄마가 곧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또 밤에는 비슷한 나이의 여자아이를 보내어 함께 밤을 지내도록 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들에게 매우 감사한다. 비록 당시 심하게 탄압을 받았지만 그들은 사람의 가장 선량한 면을 표현해냈다. 


이 후 부터 탄압은 점점 심해졌고 많은 직장의 상사들은 개인이익을 위해 양심을 가리고 조류를 따라 공안국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직원을 잡아넣으라는데 협력을 하고 직공을 직장에 가두어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으며 위에서 보낸 명령에 따라 월급을 정지시켰다. 내가 있는 직장 상사는 사악의 압력을 무릅쓰고 명백히 나에게 안심하고 일을 하라고 하며 월급도 평소처럼 주며 다만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다른 사람과 왕래하지 않는 등 조심하다가 바람이 잦아지면 보자고 말했다. 나는 상사의 뜻을 알았다. 그들은 모두 나를 동정했으며 파룬궁이 좋은 줄 알고, 억울함도 알았는데 열악한 형세 때문에 감히 의사를 분명히 나타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슬픔



나는 파룬궁이 박해를 받음으로 매우 괴로웠는데 많은 경우 사람들을 보기가 더 괴로웠다. 표면적으로 내가 박해를 받고 약자이며 그들의 동정을 받지만 사실은 동정을 받아야 할 사람은 세상 사람이다. 만일 박해가 아니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연마했을 것이며 나처럼 온갖 병의 시달림에서 벗어나고 지고무상한 고덕대법을 얻을 수 있고 사람들이 화목하게 지내며 온 가족이 행복했을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일생동안 추구하는 것이다. 현재 중공의 탄압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공의 거짓을 믿고 심지어 대립을 향하며 나쁜 사람을 돕고 있어 만년에도 만나기 힘든 기회를 잃었다. 이것이야 말로 사람들의 진정한 비애이다. 


발표시간 : 2012년 7월 10일 

출처: 파룬따파 정견망 zhengjia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