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치유의 길


지금은 치유를 할 시기입니다. 지금은 남성과 여성 에너지 간의 균형에서 생긴 균열을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현재 여성의 에너지는 가슴의 단계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비록 아픔과 고통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의 감정 센터에 두려움과 분노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현재 집단적인 여성의 영혼 속에는 강력한 영적인 욕구(충동:impulse)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여러분의 개인적인 삶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의 조언을 드리고자 하며, 이를 활용하여, 오래된 고통과 좌절감을 극복하고, 또다시 열정과 창조력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자립하고, 적극적이 되세요.


열정에 넘치는 삶을 과감하게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타인들의 뜻과 기대에 따라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자신이 지닌 꿈들을 추구하는데,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공간을 허용할 건가요? 여러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얼마나 자주 하고 있나요? 자신의 복부(belly:배)와 교감하고, 여러분의 부드러운 숨결이 배꼽 뒤에 존재하는 에너지 센터에 닿게 하여, 내면의 아이와 연결되세요. 여러분의 내면에는 아이가 살고 있으며, 이 아이는 두려움과 근심에서 벗어나, 뛰어 놀며 삶을 즐기고 싶어 합니다. 이 아이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나요? 이 아이가 여러분으로부터 무엇을 필요로 하나요? 그 아이에게 그것을 줄 수 있나요?



- 자기 억압적인(self-suppressing)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세요. 그러한 생각들은 스스로 고상하고, 영적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좋으며”, 그리고 타인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 영적인 것이라고 지금까지 들어 왔습니다. 게다가, 수 세기에 걸쳐,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봉사하고, 자신들의 육체적인 아름다움으로 남성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지닌 채 성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메시지가 여성의 영(spirit)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그러한 메시지로 인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행하는 것을 기피하게 되고, 또한 “자신의 몸은 “기쁨의 원천”이며, 타인들에 의한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을 기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성의 해방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은 자의식(自意識)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여전히 좋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성들은 자신의 남성적인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지닌 소망 및 열망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취해야 하며, 타인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기뻐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만끽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ㅡ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은 나쁜 것이거나, 이기적인 것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재고해보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존재로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낡은 도덕적인 관습들에 의해, 여러분이 방해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보세요. 영성이란 여러분의 열정을 억압하는 규칙들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기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꿈과 열망들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집중하고, 자기-중심적이 되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자신의 남성 에너지와 어울리고, 남성 에너지를 통합하는 것입니다. 치유는 복부(belly)에 존재하는 자기-신뢰(self-trust)라는 토대 위에 가슴의 에너지를 통합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강한 여성들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균형이 잘 이루어진, 부드럽고, 강한 여성들은 균형이 잘 잡힌 강하고, 부드러운 남성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오게 될, 새 세대의 아이들을 위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본보기입니다.


- 자기 자신에 대해, 연민과 인내심을 가지세요.


성적인 학대로 인한 여성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공감 그리고 부드러움을 가지고 계속해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데 그리고 자립하는데, 따르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비록 어렵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부디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연민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대하세요. 여러분이 지닌 두려움이 때로는 논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두려움은 실질적인 이유가 있기 마련이며, 그 기원은 대개 과거의 생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성행위에 대해 저항감을 느끼는 경우에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판단하거나, 자신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영혼의 일부는 여전히 충격 속에 빠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의 일부가 심한 충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트라우마는 육체와 정신 속에 갇혀 있는, 처리되지 않은 감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파괴적인 생각이나 습관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게 됩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파괴적인 패턴들은 아주 깊은 상처에 대한 반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치유의 첫 단계입니다. 이런 식으로 바라봄으로써,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더 수월해지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열쇠입니다. 오래된 트라우마를 해결하는데 있어, 수용(받아들임)과 용서는 중요한 측면들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수용함으로써, 여러분은 정말로 변화에 문을 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판단하거나, 자신에게 파괴적인 패턴들을 버리도록 강요하는 것은 단지 이러한 패턴들이 나쁜 것이라는 메시지만을 자기 자신에게 심어주고 있을 뿐이며, 상처받고 충격받은 자신의 일부에게는 정작 다가서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와 연민을 가짐으로써, 여러분은 균형과 용기, 그리고 오래된 고통을 해소하는데 - 일시에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 필요한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세요. 인내는 사랑의 한 형태입니다.

온전한 여성들


마지막으로, 나, 마리아는 전통적인 기독교가 여성으로서의 나를 묘사하고 있는 방식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기독교가 창안해내고, 널리 퍼져 있으며,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는 “성스러운 처녀(holy virgin)”라는 이미지입니다. 여러분은 대다수의 이미지들 속에서 혼란스러운 세상과는 격리된 채, 말없이 체념한 듯, 내가 온유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내 삶에 있어, 내가 내면의 깊은 평화를 성취했던 시절이 실제로 있었지만, 평화와 반대되는 것을 내가 잘 알지 못했다면, 그러한 내면의 평화는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처럼, 나도 열정과 감정들로 충만해 있던 현실적인 여인이었습니다. 나는 전혀 완벽하거나, 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강한 정의감을 지녔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을성이 없고, 완고한 편이었습니다. 지구에서, 나는 두려움과 절망에서부터 사랑과 환희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전 범위를 겪으며 살았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예수아가 십자가형을 당했을 때, 내가 내면에서 겪었던 갈등이었습니다. 나는 반항심, 깊은 슬픔 그리고 분노에 거의 완전하게 휩싸여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나는 예수아의 의지에 내맡길 수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아는 자신의 길을 선택했으며, 따라서 그러한 선택에는 모성애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떠한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면적으로 치열했던 기나긴 싸움을 거친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려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아가 죽고 난 후,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 나는 예수아의 존재를 반복해서 느꼈으며, 예수아가 내 아들보다 훨씬 더 큰 존재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나는 체념하기 시작했으며,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아주 경이로운 빛이 나를 찾아와서, 내 고통을 덜어주었으며, 나는 내 자신을 경이로운 빛에 내맡기게 되었습니다. 이 빛이 죽음의 문턱을 뛰어넘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으로 나를 들어 올려주었던 것입니다.

   

나를 그 당시의 나로 받아주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 나는 피와 살을 지녔던 여인이었으며, 모든 면에서 여러분의 누이로 받아주기를 바랍니다. 나를 성인으로 만들지 마세요. 내 인간성과 내 성(性)을 나에게 돌려주세요. 그래야 내가 여러분들 옆에 설 수가 있으며, 열정과 영성 간의 자연스러운 연결도 복원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열정과 영성은 서로를 확장시키는 것이지만, 기독교의 전통에서는 이 둘을 상반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열정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것, 다시 말해, 온전해지고, 자아를 실현하려는 자연스러운 열망을 추구하는 것이 이기적이고,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죄인이며, 인간적인 본성으로부터 여러분을 구원해주는 수단이 영성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전통 속에서, 나는 청순함과 순결을 상징하는 우상(아이콘)이 되어 왔습니다. 예수아와 아주 가까웠던 또 다른 여인이 있었으며, 이 여인은 다른 극단, 즉 열정, 성행위, 죄의 상징으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그 여인은 바로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였습니다. 내가 성스러운 처녀가 된 반면, 그녀는 창녀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기독교의 전통이 여성의 성(性)에 대해 고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나요? 그것(여성의 성)은 마돈나(성모님처럼 아름답고 온화함을 상징함), 아니면 매춘부였으며, 그 사이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영감을 받은 열정이 들어갈 공간, 즉 인간과 신성, 복부와 가슴을 이어주는 다리가 놓일 여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막달라 마리아는 여성 에너지의 금지된 측면, 즉 독립, 영적인 힘 그리고 여성의 열정을 상징했습니다. 또 한편으로, 내 성(性)과 내 열정을 제거함으로써, 나는 해(害)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우리 둘은 오늘날의 여러분들처럼, 온전한 여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또한 여러분의 가슴과 정신(spirit)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복부(belly)와 열정을 신뢰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온전한 여인이 되고, 여러분의 인간성과 신성한 본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잘 보살피세요. 여러분은 아름답습니다.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신성한 본성을 자신의 신성한 여성의 몸체(female body)를 통해 마음껏 자유롭게 표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