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동반자들의 재회 시에 만나게 되는 감정적인 함정들


같은 집안(계보:kindred)의 영들과의 만남은 많은 기쁨을 가져다줄 수가 있습니다. 영혼의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관계들은 대개 커다란 영감을 받고, 치유를 할 수 있는 원천이 됩니다. 또한 이러한 관계들은 지구에서 훨씬 더 폭넓은 방식으로 가슴 중심의 의식을 일깨우도록 자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동반자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데 있어, 어떠한 함정들이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함정들 중에서 두 가지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감정적인 의존이라는 함정


여러분들 모두는 하나가 되고, 초월하려는 깊은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의식의 장(場)의 일부는 여러분이 조건 없이 사랑받고 있었다는 기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앞에서의 채널링에서, 나는 “우주적인 탄생의 고통”을 여러분들 모두가 내면에 지니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으며, 이러한 고통은 하나가 되어 있던 의식의 장으로부터 분리되어, 개별 영혼으로서 여러분의 여정을 시작했을 때,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참조 : 예수아 채널링) 여러분이 육화할 때마다, 지니고 다니는 이와 같은 오래된 상처는 관계들(relationships)에서 감정적인 불균형을 초래하는 가장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고향으로부터 짖겨져 나와, 혼자가 되는 고통을 여러분이 간과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그 고통은 자기 나름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굶주림)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주적인 탄생의 고통은 오로지 여러분만이 치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 즉 사랑하는 사람, 공동체 혹은 신(神)이 여러분을 온전하게 해줄 거라고 계속해서 믿게 될 수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이것이 바로 감정적인 의존이라는 함정이며, 온전하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내면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혼의 동반자들과 연결될 때마다, 곧바로 이러한 함정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외롭다고 느끼고, 누군가와 간절히 함께 하고 싶을 때, 관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로 인해 감정적인 의존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영혼의 차원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깊은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관계를 맺고자 하는 동기와 바라는 목표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나치게 높은 기대감은 머지않아 적(敵)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감은 파트너들 중에서 어느 한 쪽을 숨 막히게 하고, 소유하고, 의존하려는 느낌으로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과 귀속감(belonging) 그리고 귀향이라는 약속은 오로지 여러분만이 실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낙원에 이르는 열쇠는 오로지 여러분만이 쥐고 있는 것입니다.


낙원이란 자기 자신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가슴속에서 그러한 낙원의 문을 열게 될 때, 사랑스럽고, 애정 어린 에너지가 모든 관계 속으로 들어오게 되겠지만, 그 에너지가 여러분이 타인으로부터 필요로 하거나, 기대하는 것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에너지는 여러분이 맺고 있는 관계들에 훨씬 더 균형 잡힌 에너지를 제공해주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고, 또한 타인의 동의에 의존하지 않고도, 여러분은 기쁨과 연결감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직업적으로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이것이 바로 성숙한 관계가 보여주는 청사진입니다


과거에, 영적인 집회 및 공동체들은 대개 감정적인 의존을 키우는 온상(溫床)이 되었습니다. 더 큰 전체를 위해, 개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 욕망 그리고 재능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많은 빛의 일꾼들이 오늘날에도 자신들의 감정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자신들의 인간성을 받아들이는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성을 초월해야 하며”, 그룹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낮추고, 권위 있는 인물이나, 스승의 지도하에 단결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이러한 그룹들 속에도 하나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러한 하나됨은 개인을 억압하고, 개인들을 감정적으로 전체에 의존하게 만들려는 욕구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느낌은 독립된 개인들이 자유롭게 만남으로써, 생겨나는 하나라는 기쁜 느낌과는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모든 영적인 스승들이 나쁜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스승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들이 직접 찾아낸 영적인 결과들을 타인들과 공유하려는 솔직한 소망에서 시작하게 되지만, “감정적인 의존”이라는 함정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승들은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스승은 완벽하며, 신(神)이라는 이미지를 자신들에게 엄청나게 투사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따라서 스스로 영적으로 뛰어나다고 여기는 덫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뛰어나다는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 이들은 자신들의 인간성을 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들이 결과적으로 추종자들의 찬사와 인정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감정적인 의존”이라는 문제를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이러한 형태의 영적인 스승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됩니다. 비록 이들이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희생시켰던 그룹으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난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이익을 더 높은 선(善)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최면 암시(hypnotic suggestion)는 떠나지 않고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하나됨으로부터 오는 심리적인 흔적들이 많은 빛의 일꾼들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인간의 욕구와 욕망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배웠으며, 자신을 낮추는 것이 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적인 성장과 의식의 상승이 감정과의 협력 하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여러분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감정의 중요성을 무시함으로써, 여러분은 가슴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가슴의 문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통합하고, 그러한 감정이 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러한 감정이 지니고 있는 고통과 두려움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길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스승, 요법사 혹은 가까운 친구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것은 여러분의 개인적인 여정이며, 여러분의 선택이고, 여러분이 가야 하는 길에 관한 것입니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인지, 아니면 별 볼일 없고, 보잘 것 없으며, 외롭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룹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보기 바랍니다. 스승, 영적인 가르침 혹은 - 보다 세속적인 차원에서 - 삶의 파트너나, 고용주를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희생한다고 해서, 가슴에 기초한 관계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직업적으로뿐만 아니라 개인들 간에, 감정적으로 균형이 잡혀있는 관계들은 인간의 본성을 배려하는 깊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는 독립된 사람들에 의해서만 오로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닌, 감정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 하며, 만약 그들이 영혼의 동반자라면, 같은 계보의 영이라는 것을 축하는 하겠지만, 무르익지 않은 하나됨이라는 개념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외부의 어떤 것에, 즉 온전하며,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외부의 어떤 것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관계는 영감을 주고, 커다란 기쁨과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관계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적대적(us against them)”이라는 함정


과거에, 영적인 공동체들은 대개 물질적이고 거친 세상에 대한 완충장치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과거의 삶들 속에서 수녀원과 수도원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관심과 민감성으로 인해, 그곳이 친근감을 느꼈던 유일한 장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이상의 생들에서 기성 종교나 정치 체제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던 급진적인 단체들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양쪽 모두의 경우에, 여러분은 사회와 거리를 유지한 채, 자기들만의 생활방식을 가졌던 단체에 가담했습니다.


여러분은 전생으로부터, 소속되어 있지 않거나, 아웃사이더(outsider)라는 느낌에 익숙해 있으며, 이 때문에 현시대의 영성 그룹 내에서 영혼의 동반자와 함께 하려고 하는 잘못된 동기가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동기를, 나는 “그들과 적대적인 우리”라는 함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혼자서, 혹은 그룹으로, 세상을 등지고, 사회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으려는 욕망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좌절과 절망이라는 배경으로, 종종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통합된 영성, 즉 천상과 지구가 함께 어우러져, 서로를 보완해주는 형태의 영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영성이 어떠한 조직이나, 권위, 즉 조직화된 종교들에 의해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에너지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태어나게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에너지가 조직이나, 권위에 의해 명문화되는 것이 아니라, 밑바닥에서부터(근본적으로) 개별적으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제 빛의 일꾼들은 자신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영성을 세상 속에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가장 깊은 영감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 더 이상 사회를 등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아직도 사회가 거칠고, 물질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가 진행 중에 있으며, - 감수성이 예민하다면 - 여러분은 놀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수성이 예민한 몽상가며 선구자로서, 예전에는 사회라는 망치(hammer)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과거의 어느 때보다 지구에서 환영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지위를 요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먼저, 지구에서 여러분부터 자기 자신을 환영해야 하며, 여러분은 가치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으며, 더 이상 사회를 버리고, 고립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 세상과 연결되어, 여러분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아직도 색다르다고 느끼며, 부적합한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겠지만, 그것은 괜찮습니다. 사회에 대한 완충장치로서의 역할을 하는, 마음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분리주의 그룹(separatist group)”에 더 이상 합류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분개심과 좌절감으로 인해 세상에 등을 돌리는 것은 잘못된 동기로부터 동료 빛의 일꾼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고립해 있어야 할 때가 아니라, 참여해야 할 때입니다. 이 말이 “무리를 지어, 나란히 달려야 한다(running with the pack)”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지금은 영성과 세상이 충분히 섞여, 서로 교류를 해야 할 때가 왔다는 말입니다.


일과 관계들을 통해, 여러분은 세상과 충분히 접촉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자아와 감정적인 자아 간에, 그리고 상위 차크라와 하위 차크라들 간에, 그리고 앎과 느낌 간에, 깊은 연결을 도모할 수가 있으며, 이것은 바람직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여의 참된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내면에서 영성과 세속(世俗)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세속의 기쁨을 즐기면서, 감정을 소중한 메신저로 받아들이며, 여러분이 꽃을 피울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참여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해갈 때, 마음이 같은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맺게 되는 관계들은 적대적인 세상 속에서 더 이상 피난처 혹은 안전한 항구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들은 여러분을 풍요롭게 하고, 영감의 원천이 되며, 심지어 이 세상 속에서 영혼이 자기 자신을 보다 더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게 될 것입니다.


영혼의 동반자들 간에 성숙한 관계들이 보이는 특성들


성숙한 관계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기쁨, 감사, 영감

성숙한 관계가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분위기(vibe)는 기쁨, 편안함 그리고 상호 간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 중에서 하나입니다. 서로에 대한 친근감과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지니고 있는 본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의견이 다르거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관계가 잘못되지는 않습니다. 두 개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며, 오래된 감정적인 고통으로부터 생겨나는 기대감들을 상대방에게 의식적으로 투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감정적인 갈등들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게 됩니다. 서로가 관련되어, 대면하게 되는 고통은 서로가 인정하고, 전후 사정 속에서 이해하게 됨으로써, 관계에 있어 장애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을 이어주는 다리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현실적이 됩니다.


성숙한 관계는 사랑이 깃들어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영혼의 동반자들이 만나, 최초로 심취하게 되는 열병(熱病)은 총체적인 인정(total recognition)과 상호 이해라는 약속을 내포하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동반자들조차도 이러한 이상(理想)을, 보다 더 현실적인 관계로 수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를 잘 보완해주고, 상대방을 깊은 단계에서 이해할 때조차도, 개체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속 함께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집중해야 하며, 조율을 잘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결함을 지니고 있으므로, 파트너가 지니고 있는 결함에 대해, 공감 및 연민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이러한 결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두 사람 간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열병의 우아함이나, 전면적으로 에너지를 결합한다고 해서, 때때로 영적인 환상 속에서 이상적인 파트너 (쌍둥이 영혼이라 불리는, 하지만 언급한 함정들에 비추어 보아, 위험한 개념임)에 대해 상상하는 것처럼, 한 집안 영들 간에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를 이상화하고, 낭만화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기대감으로 이어지게 되며, 결국 감정적으로 소원해지고, 서로를 비난하게 되는 주요한 원인이 됩니다. 마음이 같은 사람들끼리의 조화는 내면적으로 깊이 일치하고, 특별한 배려를 통해 서로의 결함을 이해하며,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서로를 지배하려 하지 않고, 협력하기


빛의 일꾼들과 같은 집안의 영들이 만나, 성숙한 관계를 맺게 되면, 많은 형태의 동반자 관계(partnership)가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낭만적(romantic)인 관계, 우정 혹은 관계의 목적처럼 어떠한 영적인 특성을 이 세상 속으로 가져오려는 창조적인 동반자 관계가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창조적인 동반자 관계가 여러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게 되면, 어느 정도의 조직을 필요로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조직들은 의식이 높은, 독립된 개인들이 짊어져야(떠맡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특정한 재능들을 동등한 방식으로 기여하게 되며, 이러한 재능들은 동반 상승효과(synergy)를 만들어내는 방식, 즉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커지는 방식으로 결합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네트워크들은 모든 권한이 어느 한 사람에게 주어지게 되는 권력구조(체계)를 가지게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어떠한 활동들을 주관하는 주최자(organizer)로서의 기능을 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지도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동의 에너지는 어느 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결집된 영감으로부터 추진력(impetus)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동시성(synchronicity)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감의 흐르기 때문에, 권력구조에 의존하지 않는 협력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동료 빛의 일꾼들과의 유대감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영감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이러한 유대감은 영성에 대한 비전의 전통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즉 자유로우며, 개방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 시대는 빛의 일꾼들이 사회의 바깥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활동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고립되어,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감정적인 의존”이라는 함정과 “적대적”이라는 함정을 이해하고, 피하려고 하는 이상, 다른 빛의 일꾼들과의 연결도 힘을 얻게 될 것이며, 세상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지구에서 가슴 중심의 삶을 일깨우고, 솔선수범하는 하는 것을 돕게 될 것입니다. 또한 감정적인 균형을 상실하지 않고, 그리고 사회를 떠나지 않고도, 동료 빛의 일꾼들과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관계된 직장에서, 사랑스러운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며, 타인들도 똑같이 하도록 영감을 불어넣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에너지가 사회 속에서 밑바닥에서부터 깨어나는 방식입니다.


나 또한 동료 빛의 일꾼이며, 여러분의 가족입니다. 여러분의 영들을 들어 올리고, 여러분이 또다시 희망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가 여러분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능한 가장 심오한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입니다. 나는 지금 태어나고 있는 그리스도의 에너지로서, 여러분의 가슴속에 살아 있습니다.